“이미지에 불과하던 자기공명영상(MRI)을 숫자로 이뤄진 데이터로 바꿨습니다. 1년 걸릴 연구도 앞으로는 30분 안에 가능해질 겁니다.”

김동억 동국대 일산병원 신경과 교수(사진)는 30일 “약 1만5000명 분량의 뇌 MRI를 정량화한 데이터베이스(DB)를 지난 5년간 구축해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뇌 MRI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규격화한 뒤 좌표를 설정했다. 각 좌표는 ‘정상’과 ‘이상’으로 나누고 ‘0’과 ‘1’ 같이 숫자로 구분했다. 그는 “이미지를 수치로 표현했기 때문에 여러 장을 모아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국인뇌MR영상데이터센터 센터장이다. 한국인 뇌 MRI의 표준을 만드는 유일한 기관이다. 2010년 국가참조표준센터 지정을 받았다. 설립 이후 2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2년부터 동국대 일산병원을 중심으로 11개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에서 뇌 MRI를 모았다.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연구원들이 수작업으로 기준에 맞춰 분류하고 정리했다. 단순히 MRI를 수치화하기만 한 게 아니다. 나이, 몸무게, 흡연 및 음주 여부 등 700여 개에 달하는 변수도 함께 정리했다.

그는 “기준을 정해놓고 이에 맞춰 데이터를 모았기 때문에 이미 발생한 데이터를 추적 조사하는 후향적인 연구에 비해 정확도가 높다”고 했다.

뇌 MRI를 수치화하면 빅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져 연구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뇌졸중과 흡연 음주 등과의 관계를 분석하고 싶다면 과거에는 수많은 환자 자료를 일일이 검토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몇 가지 변수만 입력하면 결과를 쉽게 도출할 수 있다.

그가 표준화 작업의 영감을 얻은 것은 2002년 박사후과정으로 하버드대 의대 영상의학과에 유학하면서다. 김 교수는 “하버드에서는 연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MRI를 표준화하는 시도가 많이 이뤄졌다”며 “이걸 한국에서 하면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뇌졸중 환자라고 해서 반드시 MRI를 찍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뇌졸중 환자의 90%가량이 MRI를 찍기 때문에 더 많은 데이터를 모을 수 있었다.

표준화한 뇌 MRI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영상 판독 의료기기 개발 업체인 제이엘케이인스펙션에 기술을 이전했다. 그는 “MRI를 디지털화했기 때문에 AI가 학습하기 쉽다”며 “상용화되면 의사가 영상을 판독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 진료 효율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