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자증세'도 포퓰리즘 정책이다
현 정부의 경제철학은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쉽게 말해 분배를 통해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분배하는 대표적 정책이 세금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부자증세’는 분배 중심의 경제철학에 충실한 방향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이론이 경제학계 주류에서 벗어난, 실패한 경제철학인 만큼 부자증세도 결국 나라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다. 국가경제를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 지지만을 본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부자증세’다. 정치권력은 지지자 수에 의해 결정되므로 고통을 주는 정책은 소수에 한정하고 혜택을 주는 정책은 다수에 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부자증세와 보편적 복지는 맥을 같이한다.

소수 부자들의 세금을 높이기 위해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한계세율을 인상하겠다고 한다. 부자의 범주에 개인뿐 아니라 대기업을 넣은 정책입안자들의 지력이 놀랍고 당황스럽다. 기업은 생명체가 아니고 법 공간의 임의단체일 뿐이라 부자가 아니고 세금을 부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법인세를 특정 대주주 가족들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대주주 가족들은 높은 소득세를 이미 부담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최고소득계층 1%가 전체 소득세수의 약 40%를 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득 격차엔 분노하지만 세금 격차엔 침묵하는 게 우리 사회다.

법인세는 결국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이런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세금의 ‘귀착이론’을 이해하려는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책방향을 정하는 데 전문가 의견이 중요하지만 한국 사회엔 전문가보다 다수 ‘댓글의 힘’이 더 강하다.

복잡한 경제이론이 어려우면 법인세의 국제동향을 보면 된다. 한국처럼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다른 선진국들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금까지 선진국가 중에서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나라는 없고 반대로 인하하려고 한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모든 나라가 법인세 인하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법인세는 기업의 투자비용을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과 국가 미래를 결정한다. 대기업은 국가 간 경쟁의 최전선에 있다. 이들의 경쟁력은 법인세 수준에 의해 결정되므로 서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인하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조세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다면 법인세 인상이 얼마나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지지만을 생각하면 제일 쉬운 방법이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이다. 대부분의 세금 인상은 당사자의 심한 반발을 초래하므로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에는 조세저항이 없다. 우리 대기업은 여러 가지 정부규제로 인해 자유롭게 얘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최고소득수준의 개인에 대한 소득세를 높이는 것도 좀 더 세련되게 접근해야 한다. 소득세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교육·운영하는 데 좋은 세목이다. 공짜에는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소득자의 절반은 정부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소득 있는 사람은 조금씩 세금을 부담해야 정부정책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런 소득세의 근본적 혁신을 토대로 최고소득계층에 대한 세금인상을 제시하면 철학 있는 세제개혁이 된다.

부자이기에 세금을 더 내라고 강요하고 부자증세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다름없다. 세금에 대한 여론은 명확하다. 본인 부담은 없으면서, 남이 부담하면 모든 세금은 좋다고 답한다. 세금정책 방향을 정하는 데 여론조사란 무의미하며 폭력적 세금정책을 밀어붙이려는 잔머리에 불과할 뿐이다.

부자증세도 포퓰리즘 정책이다. 부자증세라는 국가폭력이 정치적 지지를 받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나라경제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현진권 < 전 자유경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