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빅딜 카드'로 주한미군 철수 거론한 키신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94·사진)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카드 등을 써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고 트럼프 정부에 조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1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 2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직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다른 관료들에게 중국으로부터 더 강력한 태도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종전과 다른 새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우리(미국)가 북한 정권의 붕괴 후 닥칠 일에 대해 중국과 미리 합의한다면 북핵 문제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종의 ‘빅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이라는 완충장치를 잃고 국경 바로 옆에 미군을 두게 되는 중국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약속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리처드 닉슨, 헨리 포드 전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으로 일하며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다만 키신저 전 장관의 말대로 미국이 중국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제안한다 해도 중국이 미국의 약속을 신뢰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강하다고 NYT는 평가했다.

2005년부터 5년간 미국 국무부의 북한인권 특사를 맡았던 제이 레프코위츠 역시 키신저 전 장관과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지난 29일 NYT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오랫동안 지지해 온 하나의 한반도(One Korea)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레프코위츠는 “하나의 한반도 정책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며 “올바른 선택은 고통스럽더라도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서 중국의 불안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 등의 발언과 달리 미국이 핵 능력을 갖춘 북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외교관 크리스토퍼 힐은 NYT에 “북한이 종국에는 우리(미국)가 (북한의 전략을) 묵인할 것이라고 믿는 그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