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서봉총, 북분이 남분보다 두 배 커…"母子 무덤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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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발굴조사 결과…"북분과 남분 조성방식 달라"
무덤 두 개가 잇닿아 있는 신라시대 연접분인 경주 서봉총 북분의 장축 길이가 추정치 36.3m보다 10.4m 긴 46.7m로 나타났다.
지난해 서봉총 남분의 장축 길이가 25m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남분은 북분의 약 절반 크기로 조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 발굴조사를 통해 북분이 원형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며, 축 길이는 42.2∼46.7m로 드러났다고 2일 밝혔다.
또 북분의 적석부(돌로 쌓은 부분)는 규모가 18×11m이고, 남분의 적석부는 그보다 작은 7.6×5.5m로 조사됐다.
북분과 남분의 무덤 축조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규명됐다.
북분은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지상식으로 지면 위에 목조 구조물을 설치했으나, 남분은 땅을 판 뒤 이중으로 목곽을 만들어 매장주체부를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서봉총 남분은 북분의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은 돌)과 봉토 일부를 걷어내고 만든 점으로 미뤄 북분보다 늦게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북분에서도 남분과 마찬가지로 호석 바깥에서 제사용 항아리가 최소 7점이 출토됐고, 남분 호석 바깥 1.2∼2.1m 지점에서는 세로 5.2m, 가로 3.3m 크기의 제단 추정 시설이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신라의 대형 고분 가운데 규모가 정확하게 알려진 무덤이 많지 않다"며 "봉분은 크기는 주인공의 신분과 직결된 정보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는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로 서봉총의 피장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게 됐다.
서봉총 북분은 무덤 안에서 대도와 관모 대신 금관과 굵은고리 귀고리, 허리띠 장식이 나온 점을 근거로 신라의 왕비나 공주가 묻힌 것으로 추정돼 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서봉총처럼 규모와 구조가 확연하게 다른 연접분은 신라 능묘 가운데 거의 없다"며 "통상적으로 작은 무덤은 따로 조성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봉총의 남분에는 북분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매장됐을 것"이라며 "서봉총이 모자(母子)의 무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봉총은 1926년 일제가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처음 발굴했다.
당시 조사에서는 금관, 은제 합(盒) 등 금속품과 칠기, 토기 등이 나왔다.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봉황 모양의 금관을 수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서봉총은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부장품을 수습하는 데 치중한 탓에 발굴조사 보고서를 남기지 않아 약 90년 만에 발굴조사가 다시 이뤄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재개한 발굴조사를 10월에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간행할 계획이다.
발굴성과 설명회는 4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psh59@yna.co.kr
지난해 서봉총 남분의 장축 길이가 25m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남분은 북분의 약 절반 크기로 조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봉총 발굴조사를 통해 북분이 원형이 아닌 동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며, 축 길이는 42.2∼46.7m로 드러났다고 2일 밝혔다.
또 북분의 적석부(돌로 쌓은 부분)는 규모가 18×11m이고, 남분의 적석부는 그보다 작은 7.6×5.5m로 조사됐다.
북분과 남분의 무덤 축조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규명됐다.
북분은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埋葬主體部)가 지상식으로 지면 위에 목조 구조물을 설치했으나, 남분은 땅을 판 뒤 이중으로 목곽을 만들어 매장주체부를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서봉총 남분은 북분의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은 돌)과 봉토 일부를 걷어내고 만든 점으로 미뤄 북분보다 늦게 조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북분에서도 남분과 마찬가지로 호석 바깥에서 제사용 항아리가 최소 7점이 출토됐고, 남분 호석 바깥 1.2∼2.1m 지점에서는 세로 5.2m, 가로 3.3m 크기의 제단 추정 시설이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신라의 대형 고분 가운데 규모가 정확하게 알려진 무덤이 많지 않다"며 "봉분은 크기는 주인공의 신분과 직결된 정보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는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로 서봉총의 피장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게 됐다.
서봉총 북분은 무덤 안에서 대도와 관모 대신 금관과 굵은고리 귀고리, 허리띠 장식이 나온 점을 근거로 신라의 왕비나 공주가 묻힌 것으로 추정돼 왔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서봉총처럼 규모와 구조가 확연하게 다른 연접분은 신라 능묘 가운데 거의 없다"며 "통상적으로 작은 무덤은 따로 조성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봉총의 남분에는 북분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어린아이가 매장됐을 것"이라며 "서봉총이 모자(母子)의 무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봉총은 1926년 일제가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처음 발굴했다.
당시 조사에서는 금관, 은제 합(盒) 등 금속품과 칠기, 토기 등이 나왔다.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봉황 모양의 금관을 수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서봉총은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하지만 일제는 부장품을 수습하는 데 치중한 탓에 발굴조사 보고서를 남기지 않아 약 90년 만에 발굴조사가 다시 이뤄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재개한 발굴조사를 10월에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간행할 계획이다.
발굴성과 설명회는 4일 오후 3시에 열린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