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국]"운명바꾼 '전지현 뿌링클' 하마터면 빛 못 볼 뻔했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금 우리는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새로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이며 기존 제품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냉철한 소비자들에게 검증받은 '스테디셀러' 사이에서 신제품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좁다. [개발자국]에서는 이런 바늘구멍을 뚫고 대성공을 거둔 제품들을 만들어 낸 최고의 개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은 요식업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장 중 하나였다. 수만 개의 치킨집이 늘어서 있지만 판매하는 메뉴는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교촌치킨이 간장소스로 또 하나의 분파를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사파(邪派)'였다.
보수 일색이던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BHC의 약진 때문이다. 콜팝 외에 마땅한 히트작이 없던 BHC는 뿌링클 치킨 하나로 시장 판도를 바꿨다.
업계 내에서 중위권 수준이었던 BHC는 뿌링클 하나로 덩치를 배 이상 키웠고 지난해에는 모회사였던 BBQ를 제치고 업계 2위 자리에 올라섰다.
지난 2일 서울 잠실의 BHC 연구소에서 만난 박명성 BHC 기업부설연구소 개발팀장을 만나 뿌링클 개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박 팀장은 BHC 분사 때부터 개발팀을 이끈 '뿌링클의 아버지'다. ◆BHC의 운명을 바꾼 치킨
수많은 히트 제품이 그러하듯 뿌링클 역시 세상 빛을 보기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다.
원래 뿌링클은 태어나지 못할 뻔했던 제품이었다.
뿌링클의 초기 콘셉트는 화이트 양념 치킨. 마요네즈와 요거트, 크림으로 만든 양념을 버무린 치킨에 치즈 파우더를 찍어 먹는 제품이었다. 기존의 양념 치킨이 물엿, 케첩, 고추장 등 '붉은 소스'로만 만들어지던 것을 뒤집어 보려 했던 것이다.
"야심차게 개발한 신제품이었는데 개발 후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죠. 그래서 출시가 취소될 예정이었어요. 그러다가 바르는 양념과 찍어 먹는 파우더를 바꿔 보면 어떨까 하고 시도해봤는데 그게 통한 거죠."
자타공인 BHC의 운명을 바꾼 '뿌링클'은 그렇게 탄생했다.
뿌링클은 2014년 11월 출시 후 1년 만에 660만 마리 팔렸다. 뿌링클 출시 전인 2013년 827억원에 불과했던 BHC 매출은 2015년 1840억원으로 배 이상 뛰어올랐다.
BBQ(치즐링), 멕시카나(눈꽃치킨), 페리카나(치즈뿌리오), 치킨매니아(치즈블링치킨) 등 경쟁사들도 너나없이 미투상품을 내놨다. 치즈맛 치킨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원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소비자들도 뿌링클을 '치즈맛 치킨'의 대명사로 사용했다. 광고모델이었던 전지현과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나가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뿌링클의 성공은 치킨업계의 신제품 경쟁을 불러왔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의 치킨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매 분기마다 새로운 제품들이 등장했고 과일맛 치킨 등 새로운 도전들도 이어졌다.
치킨 브랜드들의 광고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브랜드를 알리는 데 급급했던 CF가 다른 식음료 업계처럼 신제품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BHC가 시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치킨 광고라고 하면 대부분 브랜드 광고였는데, 뿌링클의 전작인 요레요레때부터 제품에 포인트를 맞춘 광고를 시작했고 결국 뿌링클에서 '대박'을 냈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박 팀장이 모든 제품을 성공시킨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가슴 아픈 실패의 기억이 있다. 바로 뿌링클의 뒤를 이어 나온 '쏘스에무쵸'다.
"쏘스에무쵸는 홍파프리카·파인애플·레몬·할라피뇨·바질 등을 넣은 양념을 찍어 먹는 치킨이었습니다. 흔한 고추장이나 케찹이 아니라 원물을 듬뿍 넣은 소스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치킨과의 조화가 문제였죠. 처음에는 치킨에 버무린 채 출시했다가 찍어 먹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버무려 먹는 것을 기준으로 소스를 개발했는데 찍어 먹도록 하면서 실패했죠."
쏘스에무쵸의 실패가 약이 됐을까. 다음에 등장한 맛초킹은 뿌링클 못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맛초킹은 지금까지도 BHC에서 뿌링클과 함께 매출 1,2위를 다투는 인기 제품이다.
◆신메뉴는 계속 나온다
BHC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신제품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매년 2개 이상의 신제품 치킨을 내고 있으며 올해엔 벌써 치레카·치바고·붐바스틱 등 3개를 출시했다. 오는 9월에도 신제품이 나온다. 단순히 양념과 소스를 바꾸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타입의 치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일반 후라이드 치킨에 소스와 시즈닝을 뿌리고는 신제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기존 제품에 소스만 바꾸면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거든요. 마초킹의 경우 전분과 쌀가루를 넣은 파우더를 사용해 깐풍기 느낌을 냈습니다. 치바고는 바삭함이 오래 가도록 곡물 베이스 파우더로 튀겨냈죠."
지난 6월에는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프리미엄텐더 요레요레를 리뉴얼한 '스윗텐더'도 내놨다. 완전히 새로운 메뉴의 개발과 함께 기존 제품의 경쟁력도 높이겠다는 의지다.
◆미투 그 이후
박 팀장은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의 질적 성장은 결국 깊이있는 신메뉴 개발에서 온다고 말한다.
미투상품이 당장은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오리지널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미투제품으로 시작하더라도 그 이후 새롭고 다양한 신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전엔 좋은 제품이 하나 나오면 너나없이 따라했죠. BHC 뿌링클이 그랬고, 굽네치킨이 볼케이노로 성공을 거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남과 다른 것'을 만드는 시대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개발자들이 따라잡아야죠."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은 요식업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장 중 하나였다. 수만 개의 치킨집이 늘어서 있지만 판매하는 메뉴는 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교촌치킨이 간장소스로 또 하나의 분파를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사파(邪派)'였다.
보수 일색이던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BHC의 약진 때문이다. 콜팝 외에 마땅한 히트작이 없던 BHC는 뿌링클 치킨 하나로 시장 판도를 바꿨다.
업계 내에서 중위권 수준이었던 BHC는 뿌링클 하나로 덩치를 배 이상 키웠고 지난해에는 모회사였던 BBQ를 제치고 업계 2위 자리에 올라섰다.
지난 2일 서울 잠실의 BHC 연구소에서 만난 박명성 BHC 기업부설연구소 개발팀장을 만나 뿌링클 개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박 팀장은 BHC 분사 때부터 개발팀을 이끈 '뿌링클의 아버지'다. ◆BHC의 운명을 바꾼 치킨
수많은 히트 제품이 그러하듯 뿌링클 역시 세상 빛을 보기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다.
원래 뿌링클은 태어나지 못할 뻔했던 제품이었다.
뿌링클의 초기 콘셉트는 화이트 양념 치킨. 마요네즈와 요거트, 크림으로 만든 양념을 버무린 치킨에 치즈 파우더를 찍어 먹는 제품이었다. 기존의 양념 치킨이 물엿, 케첩, 고추장 등 '붉은 소스'로만 만들어지던 것을 뒤집어 보려 했던 것이다.
"야심차게 개발한 신제품이었는데 개발 후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에서 평가가 좋지 않았죠. 그래서 출시가 취소될 예정이었어요. 그러다가 바르는 양념과 찍어 먹는 파우더를 바꿔 보면 어떨까 하고 시도해봤는데 그게 통한 거죠."
자타공인 BHC의 운명을 바꾼 '뿌링클'은 그렇게 탄생했다.
뿌링클은 2014년 11월 출시 후 1년 만에 660만 마리 팔렸다. 뿌링클 출시 전인 2013년 827억원에 불과했던 BHC 매출은 2015년 1840억원으로 배 이상 뛰어올랐다.
BBQ(치즐링), 멕시카나(눈꽃치킨), 페리카나(치즈뿌리오), 치킨매니아(치즈블링치킨) 등 경쟁사들도 너나없이 미투상품을 내놨다. 치즈맛 치킨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원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소비자들도 뿌링클을 '치즈맛 치킨'의 대명사로 사용했다. 광고모델이었던 전지현과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나가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뿌링클의 성공은 치킨업계의 신제품 경쟁을 불러왔다. 소비자들이 새로운 맛의 치킨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매 분기마다 새로운 제품들이 등장했고 과일맛 치킨 등 새로운 도전들도 이어졌다.
치킨 브랜드들의 광고 형태도 크게 바뀌었다. 브랜드를 알리는 데 급급했던 CF가 다른 식음료 업계처럼 신제품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BHC가 시장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치킨 광고라고 하면 대부분 브랜드 광고였는데, 뿌링클의 전작인 요레요레때부터 제품에 포인트를 맞춘 광고를 시작했고 결국 뿌링클에서 '대박'을 냈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박 팀장이 모든 제품을 성공시킨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가슴 아픈 실패의 기억이 있다. 바로 뿌링클의 뒤를 이어 나온 '쏘스에무쵸'다.
"쏘스에무쵸는 홍파프리카·파인애플·레몬·할라피뇨·바질 등을 넣은 양념을 찍어 먹는 치킨이었습니다. 흔한 고추장이나 케찹이 아니라 원물을 듬뿍 넣은 소스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치킨과의 조화가 문제였죠. 처음에는 치킨에 버무린 채 출시했다가 찍어 먹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버무려 먹는 것을 기준으로 소스를 개발했는데 찍어 먹도록 하면서 실패했죠."
쏘스에무쵸의 실패가 약이 됐을까. 다음에 등장한 맛초킹은 뿌링클 못지 않은 성공을 거뒀다. 맛초킹은 지금까지도 BHC에서 뿌링클과 함께 매출 1,2위를 다투는 인기 제품이다.
◆신메뉴는 계속 나온다
BHC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신제품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매년 2개 이상의 신제품 치킨을 내고 있으며 올해엔 벌써 치레카·치바고·붐바스틱 등 3개를 출시했다. 오는 9월에도 신제품이 나온다. 단순히 양념과 소스를 바꾸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타입의 치킨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일반 후라이드 치킨에 소스와 시즈닝을 뿌리고는 신제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기존 제품에 소스만 바꾸면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거든요. 마초킹의 경우 전분과 쌀가루를 넣은 파우더를 사용해 깐풍기 느낌을 냈습니다. 치바고는 바삭함이 오래 가도록 곡물 베이스 파우더로 튀겨냈죠."
지난 6월에는 기존에 판매되고 있던 프리미엄텐더 요레요레를 리뉴얼한 '스윗텐더'도 내놨다. 완전히 새로운 메뉴의 개발과 함께 기존 제품의 경쟁력도 높이겠다는 의지다.
◆미투 그 이후
박 팀장은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의 질적 성장은 결국 깊이있는 신메뉴 개발에서 온다고 말한다.
미투상품이 당장은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결국 오리지널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미투제품으로 시작하더라도 그 이후 새롭고 다양한 신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예전엔 좋은 제품이 하나 나오면 너나없이 따라했죠. BHC 뿌링클이 그랬고, 굽네치킨이 볼케이노로 성공을 거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는 '남과 다른 것'을 만드는 시대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개발자들이 따라잡아야죠."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