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김현종 "수세적인 골키퍼 정신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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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청사서 취임식
"보호무역 파고 몰려오는데
방어적 자세로 업무 계속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원교근공'에서 '성동격서'로 통상전쟁 전략 바꿔야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
"보호무역 파고 몰려오는데
방어적 자세로 업무 계속하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
'원교근공'에서 '성동격서'로 통상전쟁 전략 바꿔야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
10년 만에 통상협상 진두지휘자로 ‘컴백’한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취임 첫날부터 통상 공무원들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동안의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골키퍼 정신을 당장 버리라”고 주문했다. 세계적으로 무역보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는 등 상황이 엄중한데 통상 공무원들이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왔다는 게 김 본부장의 생각이다. 그는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도 했다. 산업부 장관에 예속되지 않고 자신이 통상에 모든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까지 지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김 본부장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여러 차례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세적 방어적 자세로 통상 업무를 해나간다면 우리는 구한말 때처럼 미래가 없다”며 “통상 협상가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은 주인의식의 부재를 즉시 간파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한 뒤 애드리브로 “I guarantee it(내가 장담한다)”이라고 했다.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할 새로운 통상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이 힘을 얻어 세계 통상의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방식으로는 앞으로 총성 없는 통상전쟁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라며 “과거의 통상정책과 전략이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聲東摩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그는 취임사를 읽으면서 몇 단어를 더듬기도 했다.
미국 통상전문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하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띄어 통상교섭본부 2인자인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합류했다. 당시 김 본부장은 “1인자가 아니면 일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노 대통령의 설득으로 조정관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본부장으로 승진해 2007년까지 일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이끌었다. 이후 유엔 대사와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 등을 거쳤고 지난해 말 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선출됐다. 김 본부장은 정권이 세 번 바뀐 뒤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돌아와 자신이 체결했던 한·미 FTA의 개정 협상을 이끌게 됐다.
김 본부장은 취임식 후 차관 직급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제약 조건이 되지 않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직제상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의 지위가 부여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 본부장이 지난달 30일 발탁됐을 때부터 산업부 내에서는 “장관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도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선 “포함이 안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공동위원회 장소를 두고 양국이 자국 개최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협정문에 서울로 돼 있지 않은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본부장은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WTO 상소기구 위원 자리를 버리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왔다. 상소위원은 국제 무역 분쟁의 최종심 재판관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경쟁국들의 견제 속에 어렵게 따낸 자리인 만큼 김 본부장 후임으로 다시 한국인이 갈 것이란 보장이 없다. 문 대통령이 WTO 상소기구 위원 자리를 버리면서까지 김 본부장을 발탁한 게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어떻게 타결하는지에 달렸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김 본부장은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여러 차례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상대방이 제기하는 사안에 대해서만 수세적 방어적 자세로 통상 업무를 해나간다면 우리는 구한말 때처럼 미래가 없다”며 “통상 협상가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국익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은 주인의식의 부재를 즉시 간파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한 뒤 애드리브로 “I guarantee it(내가 장담한다)”이라고 했다. “우리가 예측 가능하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건 협상 상대방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할 새로운 통상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이 힘을 얻어 세계 통상의 틀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예측 가능한 대응방식으로는 앞으로 총성 없는 통상전쟁에서 백전백패할 것”이라며 “과거의 통상정책과 전략이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이었다면 이제는 성동격서(聲東摩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그는 취임사를 읽으면서 몇 단어를 더듬기도 했다.
미국 통상전문 변호사 출신인 김 본부장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하던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눈에 띄어 통상교섭본부 2인자인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합류했다. 당시 김 본부장은 “1인자가 아니면 일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노 대통령의 설득으로 조정관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듬해 본부장으로 승진해 2007년까지 일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이끌었다. 이후 유엔 대사와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 등을 거쳤고 지난해 말 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선출됐다. 김 본부장은 정권이 세 번 바뀐 뒤 다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돌아와 자신이 체결했던 한·미 FTA의 개정 협상을 이끌게 됐다.
김 본부장은 취임식 후 차관 직급이 업무를 수행하는 데 제약 조건이 되지 않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직제상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통상장관’의 지위가 부여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 본부장이 지난달 30일 발탁됐을 때부터 산업부 내에서는 “장관 역할을 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한·미 FTA 개정 협상에 ‘투자자·국가소송제(ISD)’도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선 “포함이 안 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공동위원회 장소를 두고 양국이 자국 개최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협정문에 서울로 돼 있지 않은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본부장은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WTO 상소기구 위원 자리를 버리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왔다. 상소위원은 국제 무역 분쟁의 최종심 재판관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경쟁국들의 견제 속에 어렵게 따낸 자리인 만큼 김 본부장 후임으로 다시 한국인이 갈 것이란 보장이 없다. 문 대통령이 WTO 상소기구 위원 자리를 버리면서까지 김 본부장을 발탁한 게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그가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어떻게 타결하는지에 달렸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