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4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인에 대한 공소장 내용 일부 변경을 신청했고, 재판부가 이를 허가했다. 특검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52차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016년 2월15일 3차 독대 시간을 ‘오후’에서 ‘오전’으로 변경하는 등 공소장 변경 허가를 구한다”고 밝혔다.
"삼성측 주장이 맞습니다"… 공소장 내용 변경한 특검
당초 특검은 공소장에 최순실 씨 조카 장시호 씨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업계획안’을 작성했고, 이 문건이 최씨를 통해 독대 당일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적시했다. 박 전 대통령이 독대 때 이 부회장에게 이 ‘봉투’를 직접 건넸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특검 조사 당시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서 받아 왔다며 봉투를 건넨 것 같다”고 한 진술도 나왔다.

반전은 재판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 봉투가 이 부회장에게 물리적으로 전달될 수 없었다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장씨가 이 서류를 서울 도곡동 자택에서 출력한 시간은 독대가 있던 날 오전 9시55분이다. 장씨는 이 문서를 최씨에게 보냈고 최씨는 오전 10시15분에 ‘잘 받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비슷한 시간인 오전 10시30분부터 청와대 안가에서는 독대가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독대를 마치고 오전 11시7분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특검은 당초 독대 시간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후’라고만 적었다. 오후라면 이 문서가 이 부회장에게 전달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변호인단이 독대가 오전 10시30분에 이뤄졌다는 청와대 확인 문서를 제출하면서 특검 측 주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도곡동에서 청와대까지 거리는 15㎞ 남짓. 오전 시간에 아무리 빨리 이동해도 교통 상황 감안 시 40분 넘게 걸리는 구간이다. 이 때문에 최씨가 청와대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이 부회장은 안가를 빠져나온 시간이 된다는 게 삼성 측 주장이다.

앞서 지난 1일에는 장 전 사장이 증인으로 나와 “이 부회장에게서 봉투를 넘겨받지 않았다”며 특검 조사 때 진술을 번복했다. 장 전 사장은 “당시에는 여론에 휩쓸려 그런 것 같다고 추측성 진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검이 ‘그러면 누구한테 받았다는 것이냐’고 따져 묻자 “안종범 청와대 전 수석한테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도 “대통령으로부터 봉투를 받은 적이 없다”며 “받았더라면 차에서라도 열어 봤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결국 특검은 ‘오전’이라는 삼성 주장을 인정했다. 특검이 자신의 핵심 증거 능력을 스스로 흔드는 ‘자백’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봉투의 전달 경위가 이 부회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유일한 직접 증거였기 때문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