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가 인쇄되어 있는 자필유언장은 효력이 있을까?

<대법원 2014. 10. 6. 선고 2012다29564 판결 : 부당이득금반환>

1. 사실관계

망 A(이하 ‘망인’이라 한다)와 원고 B 사이에는 아들 C가 있고 C는 피고 D와 혼인하여 아들 E를 낳았다. 망인은 2001. 11. 6.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여 서명날인하였다. 유언장의 주요 내용은, 대치동 토지와 그 지상 건물에 대한 임대료채권을 원고 B에게 유증한다는 내용이었다[“본인(A)이 현재 받는 월세는 본인의 처인 원고 B가 죽을 때까지 본인 사후에 받아쓰도록 한다.”]. 그 유언장 용지에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하 주소 생략) ○○빌딩’이라는 영문주소가 부동문자로 기재되어 있었다. 망인은 2001. 11. 25. 사망하였고, 서울가정법원에서 이 유언장에 대한 검인절차가 마쳐졌다. 한편 C는 2007. 10. 25. 사망하였다.

2. 소송경과

위와 같은 유언장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C 및 C가 사망한 이후에는 피고 D가 대치동 토지와 건물의 임차인들로부터 직접 임대료를 지급받아서 원고 B에게 교부하지 않자 원고 B는 피고 D를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제1심과 항소심은 이 사건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원고의 청구 중 일부를 인용하였다. 이에 피고 D만이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하였다.

3. 대법원 판결요지

민법 제1065조 내지 제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하여야만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므로 유언자가 주소를 자서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으로서 그 효력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고, 유언자의 특정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여 달리 볼 것도 아니다.

이 사건 유언장 용지에 ‘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소 생략) ○○빌딩’이라는 영문주소가 부동문자로 기재되어 있으나 이는 망인의 자필이 아니고, 망인이 자서한 이 사건 유언장의 전문에 여러 지번이 기재되어 있으나 각 지번이 기재된 위치, 내용으로 보아 이는 유언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의 지번을 기재한 것일 뿐 망인이 자신의 주소를 자서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달리 망인이 자신의 주소를 자서한 것으로 볼만한 기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 유언장에 의한 망인의 유언은 주소의 자서가 누락되어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것으로서 효력이 없다.

4. 해설

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주소요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기재하고 날인하여야 한다(민법 제1066조). 이 사건은 이 중 주소를 직접 기재하지 않은 경우이다. 민법은 유언자가 주소를 직접 기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사건의 경우에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유언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소요건이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주소의 기재를 유효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유언자의 재산권과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어 헌법소원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은 합헌이었다. 성명을 기재함으로써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이 1차적으로 특정될 것이지만 특히 동명이인의 경우에는 유언자의 주소가 그 인적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간편한 수단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과 성명의 기재뿐만 아니라 주소의 기재까지 요구함으로써 유언자로 하여금 보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유언의 의사를 표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언의 요식주의를 취하는 이상 유언을 하는 자가 당연히 작성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유언의 전문, 유언자의 성명’ 등과 같은 최소한의 내용 이외에 다른 형식적인 기재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유언의 요식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주소의 기재는 다른 유효요건과는 다소 다른 측면에서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 내지 유언의 진정성 확인에 기여한다는 것이다[헌재 2008. 12. 26. 2007헌바128].

나. 주소의 기재를 요구하는 취지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주소를 기재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유언자의 사망 후 그 진의를 확보하고, 상속재산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여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고 상속제도를 건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유언자의 주소를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유언자의 성명과 주소에 의하여 유언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성명과 함께 유언자를 특정할 수 있는 요소는 주소 외에 주민등록번호·생년월일·본적·가족 성명·사회적 신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고, 그 중에서 주소의 특정기능이 가장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고, 유언자의 주소 기재가 없으면 유언자를 특정할 수 없게 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동명이인의 경우에 유언자의 주소가 기재되지 않았더라도 그 유언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누구의 유언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므로 주소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유언자의 인적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설사 주소가 기재되어 있지 않더라도 다른 기재들을 통해 유언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다면 유효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주소를 요구하는 입법취지에도 부합하고 유언자의 의사도 존중하는 길일 것이다.

다. 결론

궁극적으로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의 형식요건에서 주소의 기재는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소의 기재는, 한번 정착하면 평생 동안 거의 이주를 하지 않던 농경사회에서 적합한 요건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어디에 사는 누구’라는 식으로 사람을 특정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특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안에서도 거주의 이전이 빈번하고 같은 시기에 여러 주거지에서 생활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는 글로벌 시대에서 주소라는 것은 한 개인을 특정짓는 데 별로 용이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유언의 내용에 의해서 유언장의 실제 작성자와 유언장의 명의자의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음은 물론, 유언이 그의 진의에 의한 것임을 충분히 밝힐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소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요건을 부과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서 주소기재를 요구하는 것은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여 위헌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있어서 주소의 기재가 성립요건으로 규정되어 있고 대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이상, 유언자로서는 자필 유언장을 작성할 때 이 점을 유의하여 나중에 유언이 무효로 되는 불상사가 생기는 일을 막아야 할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법학박사 김상훈

학력
1.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2. 법학석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3. 법학박사(고려대학교) : 민법(친족상속법) 전공
4.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Law School 졸업(Master of Laws)
5. 서울대학교 금융법무과정 제6기 수료

경력
1. 제43회 사법시험 합격
2. 사법연수원 33기 수료
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친족상속법, 신탁법 담당
4. 서울지방변호사회 증권금융연수원 강사 : 신탁법 담당
5. 법무부 민법(상속편) 개정위원회 위원
6. 대한변호사협회 성년후견연구위원회 위원
7. 금융투자협회 신탁포럼 구성원
8. 한국가족법학회 이사
9. 한국성년후견학회 이사
10. 상속신탁연구회 부회장
11. 법무법인(유한) 바른 구성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