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기업을 일구는 꿈을 꿨고 실제로 이뤘습니다. 청소년들도 우리처럼 여기서 꿈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골목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고(故) 문태식 아주그룹 창업주의 생가(生家) 자리에 마련된 ‘아주 좋은 꿈터’ 개관식이었다. 아주그룹이 지역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교육문화 공간이다. 문 창업주는 생전에 자신이 태어나 거주하던 용두동 생가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주그룹은 창업주의 뜻을 기려 단순한 부지 기부에 그치지 않고 교육문화 시설을 새로 지었다.

[CEO 탐구]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미래 준비?… 인재들 뛰어놀게 만들면 돼"
이날 행사에 참석한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은 시종 상기된 표정이었다. 환한 얼굴로 ‘기분이 좋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창업주의 생전 모습 등이 담긴 영상물을 관람할 때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창업주의 장남인 문 회장은 이곳에서 여덟 살까지 살며 인근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49㎡(약 15평) 남짓한 이 집에서 식구 열두 명이 복작거리며 지냈다”며 “1990년대부터 지방에서 올라온 직원들의 숙소로 썼다”고 회상했다.

문 회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직을 맡았다. 몇 번의 고사 끝에 결정한 일이다. 그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중견 기업계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보자는 생각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몇 년 전부터 ‘그룹 리모델링’에 몰두해왔다. 지난달 주력 계열사였던 아주캐피탈과 아주저축은행을 매각하며 충분한 현금을 확보했다. 그룹의 주축이던 금융부문을 미련 없이 떼어낸 것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를 인수하기 위해서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를 물색하고 있다.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으로 중견 그룹으로 성장한 아주그룹이 재도약의 갈림길에 선 셈이다.

[CEO 탐구]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 "미래 준비?… 인재들 뛰어놀게 만들면 돼"
올해 창립 57주년을 맞는 아주그룹은 2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 2조원을 냈다. 그룹 입사 35년차인 문 회장은 경영을 맡은 이후 기업 체질을 꾸준히 바꿔오고 있다. 건자재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금융·부동산·물류·호텔·자동차 유통 등으로 넓혔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동생인 문재영 신아주 회장과 문덕영 AJ가족 부회장과는 잡음 없이 2007년 계열 분리를 마쳤다. 문 회장은 “매주 일요일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며 “자주 만나고 대화하다 보니 서로를 잘 이해하는 편”이라고 했다.

아주그룹 지주회사 격인 아주산업은 유진기업과 삼표에 이은 레미콘 3위 업체다. 문 회장은 1997년 아주기술투자를 세워 금융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2005년 대우캐피탈(현 아주캐피탈), 2008년 기보캐피탈(아주IB투자), 2012년 하나로저축은행(아주저축은행)을 차례로 인수했다. 호텔사업에도 뛰어들어 호텔서교와 하얏트리젠시제주를 인수했다. 2006년에는 아주모터스를 세워 자동차판매 유통업에 진출했다. 부동산 시행사업(아주프론티어)에도 뛰어드는 등 사업 확장을 거듭했다.

문 회장은 “얼핏 보면 관계 없는 사업처럼 보이지만 다 연관이 있다”며 “신규 사업을 결정할 때는 핵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인지를 가장 먼저 따진다”고 했다. 레미콘사업은 업의 특성상 전국에 공장이 있다. 부동산 보는 눈을 함께 갖고 있어야 하는 사업이라는 게 문 회장의 설명이다. 호텔업에 진출한 것도 부동산 보는 안목을 키운 게 밑거름이 됐다.

그는 “아주그룹의 역사는 혁신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나무로 제작하던 전신주(전봇대)를 콘크리트로 바꾼 것이 아주산업이었고 아파트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지하를 파는 대신 콘크리트파일로 건물 기초를 쌓기 시작한 것도 아주였다. 그는 “아주에는 단순 제품을 응용 제품으로 만들어 기술을 발전시키는 창의적인 기업 DNA가 있다”고 했다.

문 회장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5년간 (주)대우에 다녔다. ‘큰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오면 좋겠다’는 부친의 권유 때문이었다. 처음엔 섬유파트에서 일했고, 3년을 런던지사에서 보냈다.

기업이 커가면서 문 회장은 한계에도 부딪혔다. “경영자 혼자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준비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고, 컨설팅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찾은 답은 ‘사람’이었다. 문 회장은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것은 경영자 혼자의 힘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아주그룹은 2007년 ‘좋은 기업문화’ 조성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좋은 기업문화를 갖추고 있으면 좋은 인재가 성장하고 활동하게 된다는 확신에서였다. 문 회장은 직급체계부터 없앴다. 2013년 말 대리-과장-차장-부장 순이던 직급을 없애고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일원화했다. 중견기업으로선 파격적인 인사 실험이었다. 수평적인 기업문화가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교세라에서 시행한 ‘아메바경영’도 도입했다. 회의에서 팀장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개별 팀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지도록 했다.

문 회장은 직원과의 스킨십을 중시한다. 수시로 사업장을 찾아가 현장 직원들과 허물없이 소맥(소주+맥주)을 마시는 걸 즐긴다. 직원들도 주저없이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회장님은 우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믿음에서다. 최고경영자(CEO)가 구성원을 믿고 먼저 다가가니 직원들의 애사심과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

조직문화 개혁도 부단히 시행하고 있다. 올해 화두는 ‘ANT경영’이다. ‘AJU New Thinking’의 약자로 아메바경영을 업그레이드했다. 구성원이 개미처럼 협력해 목표를 이뤄간다는 뜻이다. 직원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인센티브 시스템도 많다. ‘도전 MBA’ ‘도전 프로페셔널’ ‘도전 글로벌 인재’로 구성된 ‘슈퍼스타 아주’라는 프로그램이다.

문 회장은 쉼없이 ‘혁신’을 강조한다. 구조조정 등을 통한 마른수건 짜내기식 혁신이 아니다. 그는 “혁신은 기업활동의 핵심 주제며 경영은 혁신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시도는 기업 경영이 진화하는 한 부분”이라고 했다.

아주그룹은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문 회장은 “제조업과 유통, 서비스, 금융, 호텔 등 다양한 업종의 오랜 노하우가 우리의 경쟁력”이라며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사업군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도전 DNA' 물려받은 문규영 회장

고 문태식 창업주가 들려준 나폴레옹 이야기 가슴에 새겨


문규영 아주그룹 회장(사진)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선친인 문태식 창업주를 꼽는다. 문 창업주는 문 회장이 어릴 때 ‘나폴레옹과 무지개’ 이야기를 자주 해줬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열 살 때 하늘에 뜬 무지개를 바라보며 ‘난 무지개를 잡으러 갈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친구들은 비웃었지만 나폴레옹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개를 잡으러 떠납니다. 빈 손으로 돌아온 나폴레옹에게 친구들은 야유를 보냈지만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주저앉아 있었지만 나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저기까지 갔다 왔어.’ 아버지가 제게 남겨주고 싶던 메시지는 도전정신이 아닐까요.”

문 회장은 선친의 이 같은 개척자 정신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경영 스타일을 갖췄다.

문 회장은 “하루를 살아도 도전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가 경영 전반에 나선 뒤 아주그룹은 과거의 안정지향적인 기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환경 조성에 집중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최고경영자로도 알려져 있다. 문 회장은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나 자신부터 역량을 갖춰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라며 “실수를 줄여야 사업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 회장은 잘되는 다른 기업도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주그룹과 비교해 뒤지는 부분은 없는지 분석하고 고민한다. 그는 “선친이 회사명을 ‘아주(亞洲)’라고 지었을 땐 ‘아시아의 주인’이 되겠다는 뜻이었다”며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아주’ 좋은 사람들이 일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문규영 회장 프로필

△1951년 서울 출생
△1970년 휘문고 졸업
△1977년 고려대 졸업
△1978년 (주)대우 입사
△1983년 아주산업 이사
△1997년 한국레미콘공업협회 회장
△2002년 한중경제협회 회장
△2004년 아주산업 회장
△2007년 한국능률협회 경영자교육위원회 위원장
△2011년 한국마케팅클럽 회장
△2011년 휘문고 교우회장
△2012년 고대경제인회 회장
△2017년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