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재용 구형' 뒤돌아 웃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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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시콜콜 보도하며 '호들갑'
WSJ도 보란 듯 포승줄 사진 1면에
'공포의 삼성' 수뇌부 공백에 반색하는 일본 기업들
"재판서 나온 이재용 정보로 경영스타일 입체분석했을 것"
WSJ도 보란 듯 포승줄 사진 1면에
'공포의 삼성' 수뇌부 공백에 반색하는 일본 기업들
"재판서 나온 이재용 정보로 경영스타일 입체분석했을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설명하는 일본 언론의 호칭은 ‘삼성 톱(サムスントップ)’이다. 명문가 자손(scion)이나 상속자(heir) 등의 수식을 붙이며 ‘금수저 대주주’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유럽 및 미국 언론과는 이 부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의 결이 사뭇 다르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처럼 삼성전자와 직접 경쟁하는 기업이 미국 유럽보다 일본에 훨씬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본 언론이 요즘 신이 났다. 남몰래 고소해하는 기류마저 읽힐 정도다. 마치 유명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듯 이 부회장 뇌물공여죄 재판 내용을 시시콜콜 전하고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한 사실도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 유력 언론이 앞다퉈 종합면이나 국제면 주요 기사로 비중 있게 처리했다.
‘징역 12년 구형’이라는 기사 제목 아래엔 ‘이재용 피고’라는 설명이 달린 사진이 눈에 띄게 배치됐다. 통상 검사의 구형과 판결 간 괴리가 크지 않은 일본 법정의 특성을 고려하면 일본 일반 독자들에겐 이 부회장이 부패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라는 인식이 각인됐을 것이다. “이재용 씨 눈물 흘리며 ‘모두 내 잘못’”(산케이신문)이라는 제목을 본 독자라면 이 같은 확신이 더 굳어졌을 것이다.
일본 언론은 재판 과정을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분석하는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주변에서 (삼성) 회장 취임을 제안했지만 이 부회장은 거절’ 같은 기사에선 얼마 안 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이라도 전후맥락과 함께 빠짐없이 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소속이어서 삼성전자와 계열사에 관한 업무를 했다”고 한 발언을 두고는 ‘(이 부회장) 삼성 사장단 회의에 나간 적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재판과정 중에 이건희 회장이 2014년에 2회, 2013년에 12회 정도밖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벌 창업가의 특권 의식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라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도덕적 훈계’ 이면에는 이 부회장이 얼마나 자주 출근했는지를 알고 싶다는 관심도 은연중 읽힌다. 한때 자신들을 배우다가 어느덧 멀찌감치 추월해간 삼성의 기업문화에 대한 일본의 강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일본 기업들은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현미경 분석’을 마쳤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이 이처럼 이 부회장 재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로는 삼성에 대한 ‘질시와 공포’가 한몫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문 매각이나 히타치와 도시바, 소니가 힘을 합쳐 만들었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경쟁에서 뒤로 밀려버린 재팬디스플레이(JDI)의 상황을 전하는 기사에선 업계 1위 삼성전자의 ‘높은 벽’이 빠짐없이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설비투자로 반도체와 휴대폰, TV 세계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존재”(니혼게이자이신문)로 공포스럽게 묘사되기 일쑤다.
이처럼 수세로만 몰렸던 일본 기업들로선 이번 삼성 수뇌부의 공백사태가 큰 관심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삼성전자가 ‘경영혁신’의 상징이라는 도요타자동차의 두 배 가까운 5조엔(약 50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 있는 삼성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때마침 소니, 도시바 등은 한때 포기하다시피 했던 TV시장에서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있기도 하다.
촛불 시위 이후 빚어진 한국의 정권교체와 이 부회장 구속을 두고 한국에선 직접민주주의의 성과이자 경제정의 실현으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일본에선 “법과 시스템을 무시한 행위”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일본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이 부회장 재판 보도의 이면에는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인 한국인은 결국 일본을 못 당한다’는 냉정한 판단도 담겨있다는 느낌이다.
일찍이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의 손발을 자르기보다 적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데 전념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거대한 경쟁자가 스스로 머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통쾌한 반전을 꿈꿀 것이다.
그러고 보니 8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포승줄에 묶인 채 법정으로 들어가는 이 부회장 사진을 아시아판 1면에 게재했다. 한국 대표기업이 휘청이는 것을 반기는 것은 일본 기업만도 아닌 모양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한 사실도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신문 등 유력 언론이 앞다퉈 종합면이나 국제면 주요 기사로 비중 있게 처리했다.
‘징역 12년 구형’이라는 기사 제목 아래엔 ‘이재용 피고’라는 설명이 달린 사진이 눈에 띄게 배치됐다. 통상 검사의 구형과 판결 간 괴리가 크지 않은 일본 법정의 특성을 고려하면 일본 일반 독자들에겐 이 부회장이 부패범죄를 저지른 범법자라는 인식이 각인됐을 것이다. “이재용 씨 눈물 흘리며 ‘모두 내 잘못’”(산케이신문)이라는 제목을 본 독자라면 이 같은 확신이 더 굳어졌을 것이다.
일본 언론은 재판 과정을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분석하는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주변에서 (삼성) 회장 취임을 제안했지만 이 부회장은 거절’ 같은 기사에선 얼마 안 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이라도 전후맥락과 함께 빠짐없이 전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소속이어서 삼성전자와 계열사에 관한 업무를 했다”고 한 발언을 두고는 ‘(이 부회장) 삼성 사장단 회의에 나간 적이 없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재판과정 중에 이건희 회장이 2014년에 2회, 2013년에 12회 정도밖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벌 창업가의 특권 의식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라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도덕적 훈계’ 이면에는 이 부회장이 얼마나 자주 출근했는지를 알고 싶다는 관심도 은연중 읽힌다. 한때 자신들을 배우다가 어느덧 멀찌감치 추월해간 삼성의 기업문화에 대한 일본의 강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본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일본 기업들은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현미경 분석’을 마쳤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이 이처럼 이 부회장 재판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로는 삼성에 대한 ‘질시와 공포’가 한몫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문 매각이나 히타치와 도시바, 소니가 힘을 합쳐 만들었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경쟁에서 뒤로 밀려버린 재팬디스플레이(JDI)의 상황을 전하는 기사에선 업계 1위 삼성전자의 ‘높은 벽’이 빠짐없이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설비투자로 반도체와 휴대폰, TV 세계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존재”(니혼게이자이신문)로 공포스럽게 묘사되기 일쑤다.
이처럼 수세로만 몰렸던 일본 기업들로선 이번 삼성 수뇌부의 공백사태가 큰 관심이자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삼성전자가 ‘경영혁신’의 상징이라는 도요타자동차의 두 배 가까운 5조엔(약 50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 있는 삼성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때마침 소니, 도시바 등은 한때 포기하다시피 했던 TV시장에서 전열을 다시 가다듬고 있기도 하다.
촛불 시위 이후 빚어진 한국의 정권교체와 이 부회장 구속을 두고 한국에선 직접민주주의의 성과이자 경제정의 실현으로 여기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일본에선 “법과 시스템을 무시한 행위”라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일본 언론의 호들갑스러운 이 부회장 재판 보도의 이면에는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인 한국인은 결국 일본을 못 당한다’는 냉정한 판단도 담겨있다는 느낌이다.
일찍이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의 손발을 자르기보다 적의 머리를 부숴버리는 데 전념했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인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거대한 경쟁자가 스스로 머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통쾌한 반전을 꿈꿀 것이다.
그러고 보니 8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포승줄에 묶인 채 법정으로 들어가는 이 부회장 사진을 아시아판 1면에 게재했다. 한국 대표기업이 휘청이는 것을 반기는 것은 일본 기업만도 아닌 모양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