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볶은 투구벌레 애벌레 한 마리를 손으로 집어 이빨 사이에 넣고는 뜨거워서 조심해가며 살며시 깨물었다. 톡 터지는 듯한 느낌에 이어 끊어진 몸통 절반이 입안으로 들어왔다.(중략) 벌레의 악취 같은 건 전혀 없었으며,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에 경탄했다.”
고이즈미 다케오 일본 도쿄농업대 명예교수가 쓴 《사냥꾼의 고기는 썩지 않는다》는 차도 못 들어가는 깊은 산속에서 겪은 적나라한 야생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후쿠시마의 양조장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맛을 민감하게 식별했다는 저자는 학술조사를 겸해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세계의 다양한 식문화에 도전하는 음식 탐험가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날 야미조(八溝)산에서 혼자 사는 사냥꾼 친구 ‘욧샹’이 보낸 땅두릅나물을 받는다. 나물의 짙은 향기에 이끌려 무작정 욧샹을 찾아간다. 저자는 욧샹을 만나 깊은 산속에서 진짜배기 야생생활을 체험한다. 온갖 곤충을 잡아 다양하게 요리해 먹고 물뱀에 물리기도 하며 멧돼지를 사냥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저자는 이런 생활을 통해 자연을 벗삼는 풍성한 삶을 생생하게 체험한다. 야인의 삶이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욧샹은 호탕하게 멧돼지를 사냥해놓고도 “내 목숨도 하나, 선생님의 목숨도 하나, 멧돼지의 생명도 하나”라는 말로 멧돼지의 죽음을 애도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는다. 에세이 형식으로 쓰인 책에는 음식 문화사, 곤충학, 미식 탐험, 일본의 맛, 일본 문화 등이 세세하게 소개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박현석 옮김, 사과나무, 300쪽, 1만4000원)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연출한 앤서니 밍겔라는 1997년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막의 황량함을 숨 막히는 금빛 캔버스로 바꾸어 놓았던 그는 이야기를 설명하기보다 장면의 배치로 감정을 설득하던 연출가였다. 영화계의 거장이 커리어 후반부에 선택한 외도가 있었는데, 바로 오페라 연출이었다. 그의 미학을 무대라는 매체로 옮겨 놓은 기록,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다시 뉴욕 메트로폴리탄(Met·메트)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돌아왔다. 지난 9일 개막한 이 공연은 오는 3월 28일까지 총 15회에 걸쳐 무대에 오른다. ◇압도적 존재감 뽐낸 백석종지난 13일 저녁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평일 저녁이었지만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극장에 어둠이 내려앉고 서곡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지휘봉이 올라가기 전 커튼이 먼저 움직였다. 관객들은 작품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음악보다 먼저 눈으로 알아차렸다. 이렇듯 밍겔라 프로덕션의 ‘나비부인’은 시각적 자극에서 출발한다. 서곡이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위에는 작품을 상징하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논리적인 설명 대신 강렬한 직관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 프로덕션에서 미장센은 음악을 보조하는 배경이 아니라, 음악과 나란히 극을 이끌어 가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와도 같았다.무대 천장 전체에는 거대한 거울이 자리하고 있었다. 객석을 향해 비스듬히 설계된 이 거울은 무대 바닥을 수직의 스크린처럼 반사하며 무대 위 인물과 공간을 끊임없이 복제했다. 관객은 가수들의 움직임과 동선을 내려다보는 전지적 시점을 부여받았다. 이렇게 이중 시선을 갖게 된 관객 앞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전 세계 성악가들에게 ‘꿈의 성전’으로 통한다. 유럽의 고전적 전통과 미국의 거대 자본, 그리고 세계 최고의 비평 네트워크가 맞물린 이곳은 당대 최고의 가수만이 설 수 있는 검증의 무대다. 그동안 홍혜경, 조수미를 시작으로 수많은 한국 성악가들이 이 무대를 밟았지만, 유독 메조소프라노 성부만큼은 철옹성과 같았다. 서구 가수들의 압도적인 성량과 깊은 저음 사이에서 한국 메조소프라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좁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난 9일(현지시간) 마침내 그 견고한 벽이 무너졌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스즈키’ 역으로 무대에 오른 메조소프라노 김효나(사진)가 한국 메조소프라노 사상 최초로 메트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공연 후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효나는 “커튼이 열리고 관객석의 함성이 들려오는 순간 비로소 메트 무대에 섰다는 것이 실감 났다”며 “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소회를 밝혔다.김효나의 이번 데뷔는 화려한 콩쿠르 우승을 통한 ‘깜짝 스타’의 탄생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스스로를 “느린 걸음의 성악가”라고 부른다. 실제로 그는 스즈키 역 하나로만 전 세계 13개 이상의 프로덕션에서 100회 넘게 무대에 섰다. 한 배역을 수많은 지휘자 및 연출가와 호흡하며 연마해온 전문성이 보수적인 메트의 캐스팅 관행을 뚫어낸 것이다.이번 안소니 민겔라 연출의 ‘나비부인’에서 그는 스즈키를 단순한 하녀가 아닌 주인공 초초상의 동반자로 그려냈다. 김효나는 “스즈키는 관객을 대신해 울어주는 화자&rdquo
지난 16일 저녁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콘서트홀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정명훈이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 첫 공연에 쏠린 관심이 느껴졌다. 큰 키에 긴 머리를 한 객원 악장 이리나 야쿠프코바(체코필 부악장)가 미소를 띠며 나와 조율을 했다. 잠시 후 검은 옷의 두 남자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정명훈이 등장, 첫 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시작했다.정중하고 우아하게 시작한 반주는 곡이 끝날 때까지 인상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KBS교향악단뿐 아니라 국내 모든 악단에서 볼 수 있는 협주곡 반주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정성스러운 연주였다. 깊이와 양감이 있는 전주에 이어 서두르지 않고 합류한 바이올린은 점차 절도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고음을 넉넉히 짚으며 프레이징에 자기만의 무게를 실었다. 정명훈은 고개를 흔들며 세밀한 부분까지 독려했다. 비브라토는 적절하고 견고했다. 경사를 내려가는 듯한 급박함보다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안정감이 지배적이었다. 빠른 악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보잉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굽이를 함께 타며 호쾌하게 총주로 터졌다. KBS교향악단이 이렇게 당당하고 큰 존재감의 오케스트라였던가.반면 바이올린은 따스하고 친절했다. 오케스트라가 점점 빠르고 강렬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카바코스에게 카덴차는 고비였다. 고음이 조금 거칠다 싶었는데 많은 청중이 숨을 죽인 무게가 금빛 음 하나하나에 실렸다. 정명훈이 이끄는 반주는 완급을 조절하며 절묘했다. 1악장 마지막의 피날레는 장엄했다. 다행히 박수를 치는 관객은 한 명도 없었다.카바코스가 짧게 바이올린 조율을 한 뒤 2악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