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은 산호초에 싸인 수려한 경치로, 인근 사이판과 더불어 손꼽히는 관광지다. 인구 17만 명인데 관광객은 지난해 153만 명이 다녀갔다. 괌관광청에 따르면 관광객의 85%가 일본인(74.5만 명)과 한국인(54.5만 명)이다. 올 상반기엔 한국인(31.9만 명)이 일본인(32.8만 명)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 덕에 7000여 한인 사회도 활기를 띠었다. 미 달러화를 쓰고, 메이시백화점과 K마트가 있고, 거리 표지가 미국식이어서 ‘작은 미국’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빼어난 풍광의 이면엔 굴곡진 역사가 감춰져 있다.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400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와 석상, 공예 등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1521년 마젤란이 이 섬에 기착했고, 1565년엔 스페인 식민지로 편입됐다. 주민의 85%가 가톨릭인 배경이다.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괌 등 마리아나군도 남쪽 섬들을 차지했다. 그러다 1941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 후 바로 괌을 공략해 31개월간 지배했다. 이때 차모로족은 강제 노역, 매춘에 동원되고 구금·처형되는 일도 빈번했다. 지금도 외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고 한다.
괌 북쪽 200㎞ 떨어진 곳에 화산섬 사이판이 있다. 괌의 5분의 1(115㎢) 크기에 인구는 약 7만 명이다. 원주민은 괌과 같은 차모로족과 18세기 초 들어온 카롤리니아족이다. 189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지배자가 ‘스페인→독일→일본→미국’으로 바뀌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1944년 6월 치열했던 사이판전투 때 괌과 사이판에 끌려온 한인 징용자들도 무수히 희생됐다. 그 추모비가 사이판 북쪽 끝 ‘반자이(만세) 절벽’에 있다.
관광지로만 알려진 괌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 4발로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포위사격하겠다고 위협한 탓이다. 진주만 공습의 트라우마가 있기에 미국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괌 주민들이 불안해 할 만하다.
하지만 괌은 미국의 태평양 전략 요충지다. 미 7함대와 사드가 배치돼 있고, 필리핀에서 옮겨온 공군 전략자산(B-1B 등)이 집중 포진해 있다. 그래서 김정은이 표적으로 삼았겠지만 잘못 고른 듯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