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괌, 사이판
미국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은? 미 동부가 아니다. 서태평양의 미국 자치령 괌과 사이판이다. 동경 144~145도로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괌(Guam)은 필리핀 동쪽 마리아나군도의 중심이자 미크로네시아의 가장 큰 섬이다. 거제도 크기(546㎢)에 동서로 6~14㎞, 남북으로 48㎞이다. 이름은 티모르어 ‘구아한(Guahan)’에서 왔는데, ‘구(gu)’는 물을 가리킨다. 가장 깊은 곳이 1만m가 넘는 마리아나 해구가 바로 인근에 있다.

괌은 산호초에 싸인 수려한 경치로, 인근 사이판과 더불어 손꼽히는 관광지다. 인구 17만 명인데 관광객은 지난해 153만 명이 다녀갔다. 괌관광청에 따르면 관광객의 85%가 일본인(74.5만 명)과 한국인(54.5만 명)이다. 올 상반기엔 한국인(31.9만 명)이 일본인(32.8만 명)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그 덕에 7000여 한인 사회도 활기를 띠었다. 미 달러화를 쓰고, 메이시백화점과 K마트가 있고, 거리 표지가 미국식이어서 ‘작은 미국’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빼어난 풍광의 이면엔 굴곡진 역사가 감춰져 있다. 원주민인 차모로족은 400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와 석상, 공예 등에서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1521년 마젤란이 이 섬에 기착했고, 1565년엔 스페인 식민지로 편입됐다. 주민의 85%가 가톨릭인 배경이다.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괌 등 마리아나군도 남쪽 섬들을 차지했다. 그러다 1941년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진주만 공습 후 바로 괌을 공략해 31개월간 지배했다. 이때 차모로족은 강제 노역, 매춘에 동원되고 구금·처형되는 일도 빈번했다. 지금도 외세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고 한다.

괌 북쪽 200㎞ 떨어진 곳에 화산섬 사이판이 있다. 괌의 5분의 1(115㎢) 크기에 인구는 약 7만 명이다. 원주민은 괌과 같은 차모로족과 18세기 초 들어온 카롤리니아족이다. 189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지배자가 ‘스페인→독일→일본→미국’으로 바뀌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1944년 6월 치열했던 사이판전투 때 괌과 사이판에 끌려온 한인 징용자들도 무수히 희생됐다. 그 추모비가 사이판 북쪽 끝 ‘반자이(만세) 절벽’에 있다.

관광지로만 알려진 괌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 4발로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포위사격하겠다고 위협한 탓이다. 진주만 공습의 트라우마가 있기에 미국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괌 주민들이 불안해 할 만하다.

하지만 괌은 미국의 태평양 전략 요충지다. 미 7함대와 사드가 배치돼 있고, 필리핀에서 옮겨온 공군 전략자산(B-1B 등)이 집중 포진해 있다. 그래서 김정은이 표적으로 삼았겠지만 잘못 고른 듯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