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촛불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라고들 자랑했다. 30년 전 ‘87 시민혁명’에 이은 ‘현대판 명예혁명’이란 상찬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행태를 보면 과연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집단이 소수를 억압하고, 타인의 자유를 쉽사리 침해하며,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외면하는 풍경들이 점점 만연해 간다.

사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의 자기모순적 행태부터 그렇다. 사드의 전자파 위험을 반대 근거로 내세워놓고는 정작 전자파·소음 측정은 한사코 가로막는다. 도로점거, 불법검문은 넉 달째 그대로다. 화급한 국가안보를 위한 대통령의 발사대 4기 임시배치 결정조차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할 뿐, 합리적 근거도 없다. 이런 ‘억지’ 앞에선 민주주의 기본인 법치도, 과학도 설 자리가 없다.

청와대 앞에서 연일 벌어지는 집회·시위로 인해 인근 주민들이 겪는 피해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지난달에만 300건이 넘어, 소음 공해에다 문닫는 가게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주민들이 항의집회를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각각의 집단이야 집회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누구도 가질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가장한 집단폭력이나 마찬가지다.

이뿐인가. 해마다 피서지는 난장판이 되고, 집안 음식쓰레기까지 공공장소에 내다버리는 행태도 변함이 없다. 이런 ‘땅바닥 시민의식’에도, 자신이 누릴 권리에는 유독 민감한 게 지금 한국인의 자화상이 아닌지 돌아볼 때다. 북유럽 복지국가를 원하면서 그들의 시민의식을 배울 생각은 왜 하지 않나.

성숙한 민주주의는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뭐든지 ‘다수=선(善)’이란 도그마처럼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것도 없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탄생한 게 전체주의다. 다수가 원한다고 아무 정책이나 밀어붙이고,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포퓰리즘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선거절차로 선출된 정권뿐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도 전제돼야 한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가 집단의 함성에 묻히고, 과학이 미신과 선동에 훼손되고, 사법부에까지 대중의 압력이 가해지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진 않는다.

입으로 민주주의를 외친다고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 권리만큼의 책임, 자유만큼의 의무, 사익만큼의 공익을 의식하는 시민들이 많아져야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배려와 절제가 타인의 희망과 기회가 되는 숙려(熟慮)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다. 민주화할수록 정작 민주주의와 멀어지는 퇴행을 이제는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