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나흘 만에 자진사퇴…문재인 정부 인사 네번째 낙마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사진)이 11일 자진 사퇴했다. 지난 7일 임명된 지 4일 만이다. 김기정 국가안전보장회의(NSC) 2차장,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새 정부에서 차관급 이상 인사로는 네 번째 낙마 사태다.

박 본부장은 이날 오후 6시50분께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사퇴의 글’이란 이메일에서 “국민에게 큰 실망과 지속적인 논란을 안겨줘 다시 한번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저의 사퇴가 과학기술계의 화합과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려운 상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저를 본부장으로 지명해 주고 대변인 브리핑으로 또다시 신뢰를 보여주신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 본부장은 임명 직후부터 황우석 전 교수를 지원한 전력 탓에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반발 여론이 불거졌다. 그는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일하던 2006년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조작 파문과 관련해 공직을 떠났다. 황 교수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 공동저자이기도 했던 박 본부장은 당시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 때문에 과학기술인이 중심이 된 전국공공연구노조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박 본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이 일제히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전날 긴급 브리핑까지 하며 “과(過)가 분명 작지 않지만 공(功)도 함께 평가해 달라”며 과학기술계와 국민을 향해 ‘재고’를 요청하면서도 자진 사퇴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 288명이 사퇴촉구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자 이날 박 본부장 자신이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박 본부장 사퇴에 앞서 청와대에 ‘부적격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철회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의 자진사퇴 20분 만에 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내고 “박 본부장의 자진 사퇴에 대해 청와대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며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 본부장의 사퇴로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게 됐다. 청와대는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인사와 검증을 철저히 나눠 하고 있다고 밝혀 왔다. 박 본부장이 낙마하면서 인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인사에서 ‘비선 개입’을 없애겠다며 ‘인사추천실명제’를 공약했지만, 청와대는 박 본부장을 추천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공직자 사퇴는 어떻게든 정부와 여당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인선 책임론도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조미현/이정호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