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로잡은 '책거리'…K아트 뉴 브랜드로 뜬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클리블랜드미술관, 올 최대 기획전으로 조선시대 책거리 조명
정조 이후 제작된 대표작 50여점 소개…관람객들 '북적'
국제 화단에 전시·학술대회·소장 열기…'포스트 단색화' 주목
정조 이후 제작된 대표작 50여점 소개…관람객들 '북적'
국제 화단에 전시·학술대회·소장 열기…'포스트 단색화' 주목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에 있는 클리블랜드미술관은 사업가 히만 헐버트(1819~1884)가 유증한 기금을 기반으로 1916년 개관했다. 이 미술관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세례’를 비롯해 렘브란트의 ‘젊은 남자의 초상’, 피카소의 ‘생(生)’ 등 걸작들을 수집해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보스턴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과 함께 미국 4대 뮤지엄으로 성장했다. 미국 내 최대 동양미술품을 보유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올 하반기 메인 전시로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조선시대 그림 ‘책거리’를 선택했다. 조선시대 정조 때부터 유행해 2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책거리 병풍 걸작들을 모은 전시회를 지난 5일 열었다. ‘책거리-한국 채색 병풍에 나타난 소유의 즐거움’을 주제로 국내외 소장가들이 내놓은 명작과 클리블랜드 소장품 등 50여 점을 건 이 전시회는 오는 11월5일까지 이어진다.
윌리엄 그리스월드 클리블랜드미술관장은 “동서양을 잇는 역동적 문화의 흐름 속에 조선 땅에 꽃피운 책거리가 세계에서 가치를 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현대화랑의 후원을 받아 이뤄지는 이 전시회는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2016년 9~12월)와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2017년 4~6월)을 거쳐 마지막 세 번째 순회전이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선택한 책거리
책거리란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도자기, 문방구, 화병 등이 함께 그려진 책가도(冊架圖)를 뜻한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스투디올로에서 시작한 책거리는 중국의 다보격경(多寶格景)을 거쳐 조선 미술의 한 장르로 진화했다. 18세기 후반 책을 중시한 정조의 구상에 따라 궁중화원이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 책거리의 효시로 추정된다. 정조 당시 궁중에 불어온 책가도 열풍은 양반사회는 물론 민간에까지 유행했다.
전시장에는 보물급 작품이 저마다 은은한 예향(藝香)을 내뿜으며 관람객을 맞고 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책가도는 조선시대 궁중화가 이형록의 작품으로 책장을 비롯해 중국식 도자기, 문방구, 화병, 안경 등을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처리했다. 색깔도 화려하고 묘사도 직설적이어서 한국 전통 채색화가 지닌 특징이 잘 녹아 있다. 또 다른 책가도 병풍에서는 간결, 청렴, 결백의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 화조와 용을 담아낸 작품은 방금 화실에서 꺼내온 듯 채색 또한 생생하다. 개막 현장을 지켜본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현지 관람객은 책거리의 화려한 채색과 여러 물품을 적절히 배치한 구성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미술계, K아트 뉴브랜드로 주목
국제 미술계는 책가도가 신라금관, 고려청자, 불화, 단색화에 이어 세계에 보여줄 한국 문화의 뉴브랜드라는 점에 주목하고 전시회와 학술연구, 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적 맥락을 지녔기 때문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2008년 ‘미와 학문’이란 제목으로 책거리 특별전을 열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와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도 책거리 순회전에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등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지난 4월 미국 캔자스대에선 한국 미국 영국 등 3개국 학자 10여 명이 참석해 ‘화려한 채색화-조선 시대 책거리 병풍’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해외 유명 미술관들도 책거리를 소장품 목록에 속속 올려놓고 있다. 시카고아트 인스티튜트는 최근 발간한 ‘소장품 하이라이트’에 책가도를 폴 세잔의 작품과 나란히 실어 눈길을 끌었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필라델피아박물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등도 책거리 병풍을 소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수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큐레이터는 “책가도는 당대 시대상을 반영하며 사실주의 기법으로 대중의 열광을 얻어냈고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국제 화단에 책거리 열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올 하반기 메인 전시로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조선시대 그림 ‘책거리’를 선택했다. 조선시대 정조 때부터 유행해 2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책거리 병풍 걸작들을 모은 전시회를 지난 5일 열었다. ‘책거리-한국 채색 병풍에 나타난 소유의 즐거움’을 주제로 국내외 소장가들이 내놓은 명작과 클리블랜드 소장품 등 50여 점을 건 이 전시회는 오는 11월5일까지 이어진다.
윌리엄 그리스월드 클리블랜드미술관장은 “동서양을 잇는 역동적 문화의 흐름 속에 조선 땅에 꽃피운 책거리가 세계에서 가치를 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현대화랑의 후원을 받아 이뤄지는 이 전시회는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2016년 9~12월)와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2017년 4~6월)을 거쳐 마지막 세 번째 순회전이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선택한 책거리
책거리란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도자기, 문방구, 화병 등이 함께 그려진 책가도(冊架圖)를 뜻한다.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의 스투디올로에서 시작한 책거리는 중국의 다보격경(多寶格景)을 거쳐 조선 미술의 한 장르로 진화했다. 18세기 후반 책을 중시한 정조의 구상에 따라 궁중화원이 병풍으로 제작한 것이 책거리의 효시로 추정된다. 정조 당시 궁중에 불어온 책가도 열풍은 양반사회는 물론 민간에까지 유행했다.
전시장에는 보물급 작품이 저마다 은은한 예향(藝香)을 내뿜으며 관람객을 맞고 있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책가도는 조선시대 궁중화가 이형록의 작품으로 책장을 비롯해 중국식 도자기, 문방구, 화병, 안경 등을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처리했다. 색깔도 화려하고 묘사도 직설적이어서 한국 전통 채색화가 지닌 특징이 잘 녹아 있다. 또 다른 책가도 병풍에서는 간결, 청렴, 결백의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 화조와 용을 담아낸 작품은 방금 화실에서 꺼내온 듯 채색 또한 생생하다. 개막 현장을 지켜본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현지 관람객은 책거리의 화려한 채색과 여러 물품을 적절히 배치한 구성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미술계, K아트 뉴브랜드로 주목
국제 미술계는 책가도가 신라금관, 고려청자, 불화, 단색화에 이어 세계에 보여줄 한국 문화의 뉴브랜드라는 점에 주목하고 전시회와 학술연구, 작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역사적 맥락을 지녔기 때문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2008년 ‘미와 학문’이란 제목으로 책거리 특별전을 열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와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도 책거리 순회전에 유명미술관 큐레이터 등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지난 4월 미국 캔자스대에선 한국 미국 영국 등 3개국 학자 10여 명이 참석해 ‘화려한 채색화-조선 시대 책거리 병풍’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해외 유명 미술관들도 책거리를 소장품 목록에 속속 올려놓고 있다. 시카고아트 인스티튜트는 최근 발간한 ‘소장품 하이라이트’에 책가도를 폴 세잔의 작품과 나란히 실어 눈길을 끌었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필라델피아박물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등도 책거리 병풍을 소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수아 클리블랜드미술관 큐레이터는 “책가도는 당대 시대상을 반영하며 사실주의 기법으로 대중의 열광을 얻어냈고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며 “국제 화단에 책거리 열풍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