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요가 최대일 때 예비로 남겨두는 발전설비 비중(설비 예비율)을 지금보다 최대 2%포인트 낮추는 방안이 추진된다.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주 공개한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7~2031년)에서 2030년 적정 설비 예비율을 20~22%로 전망했다. 2년 전 수립된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의 2030년 예비율은 22%다. 예비율이 20%로 확정되면 원전 2기 규모의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된다.

심의위는 2%포인트 낮춘 것은 “탈(脫)원전으로 전체 발전원에서 원전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전은 1년의 20% 정도 가동이 정지되는 만큼 원전이 줄면 예비율도 낮아진다는 주장이다.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탈원전’ 정책을 기정사실화해 예비율을 끌어내리려는 것이다.

‘탈원전’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 축적용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8차 전력수급 계획 2030년 전력 수요 전망에서 예측치를 7차 때보다 10%가량 낮춘 게 시작이었다. 이어 전국 2000개 기업에 하루 최대 네 시간 전기 사용을 줄이라는 ‘급전지시’를 내렸다. 전력공급 예비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향후 전기 수요는 줄고 지금도 전기가 남아도니 ‘탈원전’ 정책은 타당하며 그에 따라 향후 전력 설비 예비율도 낮추자는 논리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춘향식으로 끼워 맞출 일이 아니다. 전력 수급에 대한 정밀한 예측과 과학적 검증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높일 방침이다. 그런데 태양광 풍력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둘쭉날쭉해 설비 예비율을 오히려 높여야 한다. 신재생 비율이 높은 독일 등의 예비율이 100%를 넘는 이유다. 좁은 국토, 일사량 부족 등은 신재생 확대의 또 다른 한계다.

전력 수요가 과연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전력정책심의위원회는 경제 성장률 둔화를 감안했다지만 4차 산업혁명은 전기 수요를 폭발시킬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 및 전기자동차 등은 모두 에너지 집약적 산업이다. 이런 측면을 간과한 채, 밀어붙이기만 하다간 ‘탈원전’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까지 감안한 에너지 백년대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