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귀 닫은 청와대 참모들
역대 정부의 청와대 초대 경제라인은 학자 출신이 많았다. 공교롭게 이들은 하나같이 단명했다. 노태우 정부의 박승 경제수석, 김영삼 정부의 박재윤 수석, 김대중 정부의 김태동 수석, 노무현 정부의 이정우 정책실장, 이명박 정부의 김중수 수석 등이 모두 1년을 못 채우고 떠났다. 길어야 10개월이었고, 3~4개월 만에 옷을 벗은 이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일한 한 전직 장관은 “이론과 현실의 괴리 때문 아니었겠냐”고 했다. 국정 철학에 정통하고 이론에 밝은 학자는 정권 초기 참모로 쓰기엔 제격이다. 하지만 정책을 펴는 건 냉엄한 현실이다. 실행 과정에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학자들은 겉돌다가 제풀에 꺾여 나가떨어진다.

문재인 정부도 청와대 정책라인이 학자 일색이다. 대부분 대선 캠프 출신 실세다. 정부 출범 후 쏟아내는 핵심 정책도 이들이 뒤에서 주무르고 있다. 관료들의 개입은 원천 차단돼 있다. 이들의 운명은 과거와 다르게 전개될까.

정책라인 학자 일색

대통령 비서는 귀는 열고 입은 닫는 게 본분이다. 이들은 거꾸로다.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하면 귀를 열기는커녕 ‘불순한 의도’라고 몰아붙이거나 ‘적폐세력’으로 규정한다.

탈(脫)원전 정책의 일방통행을 걱정하는 언론을 두고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쏘아붙인 김수현 사회수석 발언은 이들의 대응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과도한 자신감에 차 있다. 모든 현안에 대해 칼로 무 자르듯 단정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때로는 본인들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 경제교사 역할을 하는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눈을 의심케 했다.

기자가 가계부채 문제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연결해 질문하자 “(이전 정부가)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고 고압적으로 기준금리를 너무 낮추는 바람에…”라고 단정하듯 이전 정부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이랬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한국의 기준금리 연 1.25%는 좀 문제가 있지 않느냐. 그런 건(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한은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얘기를 한 셈이다. 청와대 참모의 이 한마디 때문에 시장에선 채권금리까지 들썩거렸다. 그가 문제 소지가 될 만한 말을 해놓고도 이를 정말 몰랐다면 참모 자리에서 그만 내려와야 한다.

일방통행식 정책 그만해야

완장을 찬 듯 행세하는 것은 원래 ‘폴리페서’들의 특징이다. 김 보좌관은 산업통상자원부 워크숍에 가서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을 왜 제대로 서포트하지 못하느냐”고 훈계하듯 얘기했다. 그것도 산업부 장·차관을 앞에 두고서다. 본인은 산업부 요청에 마지못해 참석해 조언한 것이라고 했다지만, 현장에 있던 대다수 산업부 공무원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위험한 건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주창한 ‘소득주도성장’은 새 정부가 발표하는 모든 정책의 이론적 근간이 되고 있다.

이 이론은 학계에서조차 논쟁거리다. 소비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매우 낮은 우리 현실에서 가처분소득을 인위적으로 늘려도 소비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하며 언젠가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의욕이 앞서는 책상머리 참모들 손에만 정책이 계속 맡겨진다면 그 시기가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정종태 경제부장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