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권에 막혀… 세계 1위 중국 맥주 '설화' 수입 무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맥주를 판매하는 브랜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버드와이저도 아니고, 하이네켄도 아니다. 국내에는 이 세계 1위 브랜드 맥주가 수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그만큼 생소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단일 브랜드 세계 1위는 중국 맥주 ‘설화(雪花·사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다.

이 술을 당분간 국내에서 맛보기는 힘들 것 같다. 주류 수입업체 니혼슈코리아는 설화의 수입을 추진했지만 얼마 전 포기했다. 이유는 아모레퍼시픽 때문이다. 아모레는 대표 화장품 ‘설화수(雪花秀)’의 유사 브랜드 난립을 막기 위해 ‘설화’의 상표권까지 등록해 놓았다. ‘설화’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파는 것은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중국 측이 설화라는 이름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해 수입이 무산됐다. 니혼슈코리아 관계자는 “설화맥주 제조사인 중국 최대 맥주회사 화룬맥주 측이 ‘설화’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면 절대 수출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니혼슈코리아는 설화와 같은 뜻의 영어 발음인 ‘스노우’, 중국어 발음인 ‘쉐화’ 등으로 표기하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화는 10년째 단일 브랜드로 세계 맥주시장 판매량 1위를 지키고 있다. 올해도 세계 시장 점유율 5.5%, 중국 점유율 30%대를 기록하고 있다. 설화맥주는 1994년 영국 사브밀러와 중국 국유기업 화룬창업이 합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L당 1달러 정도에 팔리며 ‘싸고 맛있는 국민 맥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화룬창업은 AB인베브에 인수된 사브밀러가 보유한 화룬설화양조 지분 49%를 16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했다. 100% 중국 회사가 된 것.

주류업계 관계자는 “칭다오 등이 국내에서 중국 맥주의 인지도를 올려놓았기 때문에 설화를 누가, 언제 수입할지가 업계의 관심”이라며 “한국의 시장 규모가 더 컸다면 설화맥주 측이 상표를 어떻게든 다르게 표기해 수출을 강행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설화수 인기를 틈타 ‘설안수’, ‘설로수’, ‘월화수’ 등 유사상표가 등장하자 다양한 상표를 등록했다. 설화수뿐만이 아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등록한 상표만 1만 건이 넘는 국내 상표권 최다 보유기업이 됐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제품이 세분화되고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기업 자산으로서 브랜드 관리를 오랜 기간 해왔다”며 “제품 수명이 짧아지면서 신규 브랜드 출시가 잦아진 것도 상표권 등록이 많아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상표권은 등록일로부터 3년 안에 쓰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