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중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의 역내 기업 인수합병(M&A) 심사를 강화한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다음달 회의 기조연설에서 전략산업 분야 기업 인수 심사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유럽의 첨단산업, 에너지, 사회기반시설(인프라) 등으로 들어오는 중국 자금이 급증하면서 기술 유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FT는 미국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문제를 조사하기로 한 것과 같은 이유에 따른 조치라고 전했다.

중국 자본의 역내 투자에 대한 EU의 우려는 지난해 중국 가전업체 메이디가 독일의 산업용 로봇업체 쿠카를 인수하면서 증폭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메이디의 쿠카 인수 당시 독일 기업의 중국 내 직접 투자를 가로막는 중국 당국의 규제 정책을 지적하며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와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EU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FDI)는 351억유로(약 47조원)로 전년보다 76% 늘었다. 같은 기간 EU의 중국 투자는 77억유로에 그쳤다.

EU 통상전문가인 앙드레 사피르 브뤼셀자유대 교수는 “(중국과) 동일한 힘으로 협상할 수 있는 무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자국 시장을 충분히 개방하지 않으면 중국 자본도 유럽에서 비슷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동등한 시장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 자본의 공공기업 인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를 통해 중국 자본을 감시하고 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미국 기업 인수를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CFIUS는 지난해 중국 푸젠그랜드칩투자펀드의 독일 반도체기업 아익스트론 인수도 막았다. 아익스트론의 주요 판매시장이 미국인 점을 이용했다. 호주도 지난해 인프라를 외국 자본에 매각할 때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FIRB)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EU 28개 회원국 가운데 외국 자본의 기업 인수나 투자가 자국 안보나 공공정책 목표에 위협이 되는지 심사하는 제도를 갖춘 곳은 13개국에 불과하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