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리더 탐구①] 1세대 바이오벤처 바이오니아 "25년 기술력으로 세계 개척 본격화"
"HBV(B형 간염) HCV(C형 간염) HIV(에이즈) 등 3종의 분자진단 제품에 대한 유럽 체외진단 의료기기 인증(CE-IVD)이 오는 10월께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 분자진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품목으로, 판매허가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입니다."

1992년 설립된 바이오니아는 1세대 바이오벤처다. '1세대'라는 단어에서 짐짓 업계 원로의 분위기를 생각했다. 그러나 박한오 대표(56·사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 바이오업계의 개척자(파이오니어)를 마주하고 있음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0일 대전 대덕 본사에서 만난 그는 '아시아 최초', '세계 최초'라는 말을 끊임없이 엮어냈다. 25년이라는 업력은 박 대표의 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오는 28일 창립 25주년을 맞는 바이오니아는 그동안 쌓아온 '최초' 기록들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 개척을 본격화하고 있다.

박 대표는 "HIV HBV HCV 분자진단 시약(키트)의 유럽 CE-IVD 'ListA' 인증을 신청했다"며 "인증을 획득하면 아시아 기업으로는 최초"라고 말했다.

이번 인증 신청은 국내 기업 중 최초로 글로벌 기업 로슈의 최신 분자진단 시스템인 'COBAS 8800'과 비교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동등한 성능을 보인 임상 결과를 감안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분자진단 장비와 진단키트의 자체 개발 및 제품화에 성공화한 회사는 세계에서 로슈와 바이오니아 둘 뿐이다.

분자진단 핵심 시장 진입 '눈 앞'

바이오니아의 이번 인증은 세계 분자진단의 핵심 시장에 들어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CE-IVD 인증은 질병의 위험도에 따라 4등급으로 분류된다. 최상위 분류인 'ListA'는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질병들로 구성돼 있고 B형과 C형 간염,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등이 포함된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분자진단 시장의 규모는 약 79억달러(9조원)로 추정된다. 이 중 에이즈와 B형 및 C형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HIV HBV HCV 진단 시장이 38억4000만달러로 절반에 가까운 48.6%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이 가장 크지만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로슈 홀로직 퀴아젠 등의 글로벌 기업이
'ListA'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한 분자진단은 세계 인구의 80%는 쓰지 못하고 있는데, 비싸고 너무 전문적이기 때문"이라며 "바이오니아는 소재부터 장비, 시약까지 분자진단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체 생산하고 있고 이를 통한 가격 경쟁력으로 분자진단의 사각지대에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니아 분자진단 키트의 가격은 글로벌 기업의 4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은 비싼 가격 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인증의 주요 목표는 글로벌 펀드다. 'ListA' 허가가 나면 유엔이나 글로벌 자선기금에서 조성한 펀드의 구매목록에 들어갈 수 있다. 바이오니아 제품의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생각하면 인증 획득 시 글로벌 펀드로부터의 수주를 낙관하고 있다. 이들로부터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오니아의 분자진단 기술력은 지난해에도 입증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바이오니아의 지카 뎅기열 치쿤구니아 바이러스 다중 진단키트에 대한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위급 상황에서 WHO가 세계 각국에 배포하는 제품이 됐다는 의미다.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세 바이러스를 모두 진단하는 제품으로 WHO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것은 바이오니아가 유일하다.

박 대표는 "기존 연구용 유전자 제품이 바이오니아의 첫번째 현금창출원(cash cow)이고, 올해부터는 두번째 현금창출원으로 분자진단을 장착하게 된다"며 "이를 기반으로 RNA 저해(RNAi) 신약을 개발해 맞춤형 헬스케어 기업이 되는 것이 중장기 목표"라고 했다.

농기계 창고에서 시작된 '유전자 기술 완전 국산화'

바이오니아는 '유전자 기술의 완전 국산화'를 목표로 1992년 설립됐다. 박 대표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들어갔을 때, 유전공학진흥법이 만들어졌다. 그는 KAIST에서 유전공학진흥법의 첫번째 정부 과제를 수행하며 DNA 합성기술을 개발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전공학센터, 생명공학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갔다.

유전공학 연구의 초창기라 모든 것이 미국에서 수입됐다. 한계가 있었다. 유전자 기술은 생명공학에 있어 반도체와 같은 것인데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 대표는 나이 서른에 유전자 기술을 국산화하겠다고 마음먹고 바이오니아를 창업했다.

"DNA 합성과 유전자 증폭 효소, 두 개를 가지고 대전 학하동에 있는 농기계 창고를 빌려서 바이오니아를 세웠습니다. 직원도 저와 엔지니어 2명이었죠." 현재 바이오니아의 임직원은 360여명에 달한다.
1993년 학하동 시절(왼쪽)과 현재 대덕 바이오니아 본사
1993년 학하동 시절(왼쪽)과 현재 대덕 바이오니아 본사
바이오니아는 설립하자마자, 국내 최초로 합성 DNA 및 RNA, 유전자 증폭(PCR) 효소를 국산화해 기존 외국산 제품의 40% 가격으로 각 연구실에 공급했다.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고, 3년간의 실적이 쌓이자 기술보증기금의 1호 기술개발시범기업에 선정돼 대출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부터 농기계 창고를 벗어나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최첨단 기술들을 중심으로 연구해왔다. 매년 매출의 30% 이상을 투자해 DNA, PCR, RNAi(RNA interference) 관련 기술을 국산화했다. 1962년 1993년 2006년 노벨상을 수여한 세계 유전공학계를 뒤흔든 이론이다. 한국 유전공학 연구의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그의 집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시련도 있었다.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적자가 이어졌고, 100억원을 들여 지은 DNA 합성 공장에 화재도 발생했다. 올해는 연구용 유전자 제품에 이은 분자진단 기술의 상용화로 영업이익 흑자전환을 바라보고 있다. 유전자 기술을 기반으로 한 분자진단 시장에 뛰어든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RNAi 신약 개발도 본격화

난치성 질환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RNAi 신약 개발도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박 대표는 "질환은 특정 단백질이 과다하게 만들어져서 생긴다"며 "지금까지의 화학합성이나 바이오 의약품 대부분은 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에 작용했지만, RNAi는 관련 단백질의 생성 자체를 차단하는 새로운 개념의 유전자신약 기술"이라고 말했다.

바이오니아는 RNAi 논문이 발표된 초창기인 2001년부터 관련 기술을 개발했다.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라면, RNA는 설계도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RNAi는 설계도 전달 과정을 방해해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 것이란 설명이다.

단점은 RNAi 물질이 혈액에서 분해되고, 질병세포 내 전달이 어렵다는 것이다. 바이오니아는
RNAi 물질을 표적 세포까지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SAMiRNA'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의 짧은 합성 RNA(siRNA) 전구물질(prodrug)이다. 전구물질이란 체내 흡수 이후 표적한 조직에서만 효능을 발휘하는 약물을 말한다. 동물실험에서 항암 효과를 입증했다.

본격적인 임상을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지난 6월 18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GMP(우수의약품제조및품질관리기준)급의 RNA 생산 공장 투자에 들어간다.

그는 "GMP 투자가 완료되면 바이오니아는 신약후보물질 도출에서 최종 생산까지 RNAi 수직일관화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며 "RNA 생산을 위탁업체(CMO)에 맡기게 되면 기술유출의 위험도 있고, 관련 CMO들은 이미 내년 말까지 생산 계약이 차 있어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개발 중인 RNAi 관련 신약들이 임상 단계에 접어든 만큼, 직접 생산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한양행과 공동 개발 중인 흉터 치료제와 간암 치료제는 내년에 전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RNAi 기반 탈모방지 기능성 화장품은 내년 임상시험을 마치고, 식약처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첫 목표가 유전자 기술을 내부적으로 습득하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목표는 이를 통해 새로운 길을 닦아 나가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목표의 단 10% 밖에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