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해남에 여의도 4분의 3 면적(220만㎡)의 조선소를 보유한 대한조선은 아프라막스급(11만5000t급) 유조선(탱커)을 주로 생산하는 중형 조선사다. 대주그룹이 2004년 설립했지만 2009년 그룹이 몰락하면서 채권단관리(워크아웃)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등을 거쳤고 현재 채권단이 관리하고 있다. 이 조선소는 2019년 상반기까지 일감이 꽉 찬 상태다.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86척을 수주하고 65척을 인도했다. 지난 2년간 역사상 최악의 ‘수주절벽’을 지나며 일감이 바닥나기 시작한 울산 거제 등의 대형 조선사와는 다른 분위기다.

◆선택과 집중으로 비용 낮춰

일감이 넘치는 비결은 원가 경쟁력에 있다. 이 회사는 컨테이너선, 유조선, 가스선 등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춘 다른 업체와 달리 아프라막스급 유조선 건조에만 집중하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다. 이 선종만 24척 인도했다. 박용덕 대한조선 사장(사진)은 “여러 선종을 수주하면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한 가지 선종에 집중하고 노하우가 축적되다 보니 건조 비용이 절감되고 설계도 직접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조선은 다른 업체처럼 호황기에 생산설비 증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두 번째 도크를 짓다가 말고 기존 첫 번째 도크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전략을 선회했다. 수요보다 지나치게 많은 생산설비로 막대한 고정비를 지출하는 다른 업체보다 원가 부담이 적은 이유다.
남다른 기업문화도 생산효율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대한조선 직원들은 근무시작 시간(오전 8시)보다 20분 먼저 출근해 작업이 정시에 이뤄지도록 준비한다. 점심시간 전에 구내식당 앞에 미리 줄을 서지 않는 등 근무시간도 철저히 지킨다. 다른 조선소는 출근 후 20분 뒤 작업이 시작되거나 점심시간 20분 전부터 식당앞에 줄을 서는 사례가 많다. 회사측은 “같은 노동시간이지만 다른 조선소보다 하루 1시간 이상 생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으로 대한조선은 연간 인건비를 2015년 420억원에서 지금은 60% 수준인 260억원으로 낮췄다. 이 회사의 원가경쟁력은 최근 국내 은행들이 다른 조선사에 “대한조선 수준의 원가경쟁력을 갖춰야 선수급 환급보증(RG)을 발급해주겠다”고 요구하면서 유명해졌다. 원가경쟁력은 높은 품질로 이어졌다. 박 사장은 “중국 선박보다 10% 이상 비싸게 팔리지만 노르웨이, 그리스, 싱가포르 선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법정관리 풍파 속 주인의식 생겨

2016년 9월 대한조선으로부터 자구안을 받은 채권단은 깜짝 놀랐다. 채권단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자구안을 냈기 때문이다. 보통 채권단과의 자구안 협상은 노동조합의 반발로 장기간 난항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도 내부 반발에 부딪혀 자구안 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채권단은 대한조선에 임금 10% 반납과 인력 10% 감축(50명)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한조선은 임금을 25% 반납하고 인력도 20% 감축(100명)했다. 채권단이 꺼내지도 않은 ‘한 달간 순환 무급휴직제도’ 도 제안해 전 직원이 시행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은행이나 경영진의 압력 없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고강도 자구안을 제안하고 시행한 사례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대한조선 임직원이 2009년 워크아웃과 2014년 법정관리 등 풍파를 거치면서 위기대처능력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최성권 대한조선 노조위원장은 “직원들이 법정관리 아래 수차례 월급이 밀리는 경험을 하면서 일터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며 “우리가 회사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 우리 후손이 자랑스럽게 다닐 수 있게 하자는 일종의 ‘주인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애사심은 남다르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일시적인 자금 미스매칭(만기 불일치)으로 직원 급여가 3주일 가량 늦게 지급됐다. 하지만 직원들은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미리 알려달라”고만 했을 뿐 다른 불평은 하지 않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