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선고 예정 재판에 범죄사실 '끼워넣기' 대신 관련자 대거 수사로 갈 듯
30개 외곽팀, 판 바꿀 '게임체인저' 수준 아니다 판단…MB정부 靑 겨냥 주목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테스크포스(TF)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대규모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여론 조작 활동을 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은 가운데 검찰은 원세훈 전 원장 재판의 변론 재개를 신청하는 대신 전면 재수사에 나서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국정원 TF가 최근 '댓글 사건'과 관련해 넘긴 '사이버 외곽팀' 운영에 관한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원 전 원장의 범죄사실과 '포괄일죄' 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리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포괄일죄란 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범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포괄일죄가 되려면 범죄 의도의 단일성이 있고, 시간적·공간적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원 전 원장은 2013년 6월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5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일부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고법으로 돌아왔다.

이 재판에서는 70여명으로 꾸려진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이 '일부 외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감행한 인터넷상 정치·선거 개입 활동이 핵심 혐의로 다뤄졌다.

법원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1, 2심에서 심리전단 파트장 이모씨가 친구인 다른 이모씨에게 월 300만원가량의 보수를 지급하고 오늘의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정원이 내려준 지침에 따라 정치적인 성격의 글을 쓰게 한 점은 인정한 바 있다.

검찰은 TF 자료가 국정원이 외부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은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앞선 재판에서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이 외부의 도움을 받은 사실 자체가 인정된 만큼 TF가 보낸 자료들이 현 단계에서 기존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 수준의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30개에 달하는 '외곽팀'의 활동이 기존 공소사실과 한 덩어리 격인 포괄일죄라고 본 만큼 4년 넘게 진행된 기존 재판에 범죄사실을 추가로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TF 조사가 아직 초기 단계여서 11일 검찰이 받은 자료에는 '외곽팀'의 정확한 규모와 인적 구성, 활동 내용 등은 포함되지 않은 점도 이런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검찰은 국정원으로부터 확보한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 원 전 원장의 정치활동 관여 정황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은 재판부가 봐야 할 중요 자료라며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이 선고 연기를 신청하지 않는다면 파기환송심 선고는 예정대로 이달 30일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검찰은 원 전 원장의 기존 사건과 별도로 국정원 TF가 조사한 의혹들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나서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상태다.

기존 재판에 '끼워 넣기'를 해도 형량 반영 요소 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므로 차라리 원 전 원장의 새로운 혐의를 밝히거나 추가 처벌이 필요한 다른 인물이 있는지를 파헤친다는 것이다.

중앙지검은 이날 업무를 시작한 박찬호 2차장검사의 지휘 아래 공안2부(진재선 부장검사)와 공공형사수사부(김성훈 부장검사)를 주축으로 수사팀을 꾸려 TF 자료 등을 기초로 수사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1월 청와대에 보고된 'SNS 영향력 문건' 등은 국정원이 광범위한 SNS 활동을 통해 사이버 불법 정치활동에 개입하는 중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원 전 원장을 정점으로 한 '댓글 사건' 수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이보배 기자 sncwo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