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명품에 대한 편견을 산산이 깨뜨린 전시
보는 것만으로도 사치를 누린 것 같아
황주리 < 화가 >
보는 것만으로도 사치를 누린 것 같아
황주리 < 화가 >
한국에서 명품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언제부터였을까? 40년 전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학교 앞에 양장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시절, 그때만 해도 명품이라는 개념은 그리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크리스찬디올’이니 ‘피에르가르뎅’이니 하는 명품 백을 들고 나타나는 아이들이 드물게 있었다. 하지만 신기해할 뿐 아무도 그 가방을 꼭 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옷감을 떠다가 디자인을 직접 해서는 비싸지 않은 동네 양장점에 맡기면 근사한 옷들이 돼 나왔다. 나는 매일 컬러풀한 옷으로 갈아입고 답답하고 지루했던 1970~1980년대를 통과했다.
기성복 메이커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옷이 명동에 있던 기성복 메이커 ‘프랑소와즈’다. 화려하고 대담한 색깔과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띄던 그 옷들을 쇼윈도를 통해 바라만 봐도 즐거웠다. 그리고 또 훌쩍 시간이 지나 명품 백을 드는 게 유행인 시절이 왔고, 수많은 사람이 가짜 명품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해하던 시절도 지나간 것 같다. 점점 더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명품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 중 하나다. 젊은 시절 그 흔한 명품 백 하나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싸기만 한 명품, 다 똑같이 생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은근히 폄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명품에 관한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요즘 열리고 있는 루이비통의 환상적인 전시를 보면서다. 그 전시를 보면서 나는 명품은 어떻게 명품이 되는 것인가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의 제목이 붙은 그 전시가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무료 전시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1854년부터 현재까지의 루이비통의 모든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는 관람객의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상당한 수준의 설치미술 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비싼 명품으로만 알고 있던 루이비통의 세계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마술의 세계였다. 1835년 13세의 루이 비통이 고향인 스위스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 앙쉐를 떠나 걸어서 파리에 도착하는 데는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파리에서 맞춤 상자 제작자의 도제로 일했던 그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연구해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현대적 여행 가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름다움과 기능성 및 이동성을 고루 갖춘 명품 루이 비통의 전시는 돈 있는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화려한 세계로의 여행이 아니라 맨발로 2년을 걸려 파리로 떠난 한 소년의 꿈을 엿보는 신기한 여행이었다. 광대한 사막 배경 위에 놓인 오래된 가방들은 인류의 먼 여행의 기억을 일깨웠다. 아프리카 횡단 탐험대, 아시아 횡단 탐험대 등 여행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하는 여행 가방의 역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치를 누리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명품이 어떻게 명품이 됐는지를 말해주는 세월이 깃든 명품의 역사는 마치 “이 물건은 비쌉니다. 사시는 분은 사시고 사지 못하시는 분은 구경만 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쇼핑’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지평을 넓혀주는 건 아닐까. 전시도 영화처럼 여행일 수 있는 생각을 갖게 해준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꿈이었다.
황주리 < 화가 >
패션 감각이 뛰어난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옷감을 떠다가 디자인을 직접 해서는 비싸지 않은 동네 양장점에 맡기면 근사한 옷들이 돼 나왔다. 나는 매일 컬러풀한 옷으로 갈아입고 답답하고 지루했던 1970~1980년대를 통과했다.
기성복 메이커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내가 대학교 3학년 때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옷이 명동에 있던 기성복 메이커 ‘프랑소와즈’다. 화려하고 대담한 색깔과 독특한 디자인이 눈에 띄던 그 옷들을 쇼윈도를 통해 바라만 봐도 즐거웠다. 그리고 또 훌쩍 시간이 지나 명품 백을 드는 게 유행인 시절이 왔고, 수많은 사람이 가짜 명품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해하던 시절도 지나간 것 같다. 점점 더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명품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 중 하나다. 젊은 시절 그 흔한 명품 백 하나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싸기만 한 명품, 다 똑같이 생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은근히 폄하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명품에 관한 나의 편견이 완전히 깨지는 일이 일어났다. 요즘 열리고 있는 루이비통의 환상적인 전시를 보면서다. 그 전시를 보면서 나는 명품은 어떻게 명품이 되는 것인가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의 제목이 붙은 그 전시가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무료 전시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1854년부터 현재까지의 루이비통의 모든 여정을 보여주는 전시는 관람객의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는 상당한 수준의 설치미술 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비싼 명품으로만 알고 있던 루이비통의 세계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마술의 세계였다. 1835년 13세의 루이 비통이 고향인 스위스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 앙쉐를 떠나 걸어서 파리에 도착하는 데는 2년의 시간이 흘렀다. 파리에서 맞춤 상자 제작자의 도제로 일했던 그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연구해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현대적 여행 가방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아름다움과 기능성 및 이동성을 고루 갖춘 명품 루이 비통의 전시는 돈 있는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화려한 세계로의 여행이 아니라 맨발로 2년을 걸려 파리로 떠난 한 소년의 꿈을 엿보는 신기한 여행이었다. 광대한 사막 배경 위에 놓인 오래된 가방들은 인류의 먼 여행의 기억을 일깨웠다. 아프리카 횡단 탐험대, 아시아 횡단 탐험대 등 여행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하는 여행 가방의 역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치를 누리는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명품이 어떻게 명품이 됐는지를 말해주는 세월이 깃든 명품의 역사는 마치 “이 물건은 비쌉니다. 사시는 분은 사시고 사지 못하시는 분은 구경만 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쇼핑’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지평을 넓혀주는 건 아닐까. 전시도 영화처럼 여행일 수 있는 생각을 갖게 해준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꿈이었다.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