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본은 지금, 시골이 더 '핫'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로컬 지향의 시대
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 이혁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20쪽 / 1만4000원
은행을 카페로, 창고를 책방으로…일본 젊은이들의 '로컬 지향성'
소멸위기 처한 작은 마을 되살려…일과 삶 균형 원하는 트렌드 반영
양적성장 중심의 지역정책 한계…고유 자원 살려야 균형 발전 가능
마쓰나가 게이코 지음 / 이혁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20쪽 / 1만4000원
은행을 카페로, 창고를 책방으로…일본 젊은이들의 '로컬 지향성'
소멸위기 처한 작은 마을 되살려…일과 삶 균형 원하는 트렌드 반영
양적성장 중심의 지역정책 한계…고유 자원 살려야 균형 발전 가능
일본 시마네(島根)현 서부 끝자락에 있는 고쓰(江津)시는 인구 2만5000명에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3%에 달하는 마을이다. 고쓰시를 포함한 시마네현 서부 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인구 감소가 시작된 ‘과소화(過少化)의 발상지’다.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교통도 불편해 지방자치단체가 정주자(定住者)를 늘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고쓰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입주자가 빠져나가 텅 빈 상점가에 젊은이가 하나둘 모이면서 상점가 리노베이션이 시작됐다. 이 지역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히라시타 시게치카는 빈 은행 점포를 카페 겸 술집으로 개조했다. 1층 구석 은행 금고를 사생활이 보장되는 카페의 개인실로 꾸미고 2·3층은 디자인 사무실을 만들었다. 30대 사회기업가 오노 히로아키는 폐업한 창고에 헌책방을 차렸다. 이 책방은 점차 번창해 직원이 스무 명까지 늘어났다. 이후 이 상점가에는 와인숍, 선술집 등 모두 15개 점포가 새로 들어서며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부활했다. 고쓰시는 창업을 희망하는 젊은 사람을 더 많이 불러모으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와 손잡고 2010년부터 매년 ‘비즈니스 플랜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입상자에게는 지역 인재를 소개하고, 인구 이탈로 생긴 빈집을 저렴하게 빌려주는 등 다양한 창업 지원 및 거주 편의를 제공한다. 도쿄 등 대도시에 살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쓰시에 돌아온 청년들은 다양한 사업모델을 선보이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줄곧 줄어들던 인구도 증가세로 반전됐다.
마쓰나가 게이코 일본 오사카시립대 창조도시연구과 교수는 《로컬 지향의 시대》에서 ‘감소의 시대’에 쇠퇴하거나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 소도시와 작은 마을들이 지역성을 살린 자신만의 생존법으로 부활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해 상세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에 자라난 젊은 층 사이에 불고 있는 ‘로컬 지향성’에 주목해 지방을 초고령화·낙후지역 등 골칫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주도할 ‘희망의 싹’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지방 문제를 해결하자’는 도시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지방이 보유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 발전할 것인가’라는 지방 중심적 관점으로 지역 발전과 불균형 해소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와 어린 자녀를 둔 세대를 중심으로 농산어촌 등 지방으로 이사하거나 이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로컬 지향성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 트렌드가 깔려 있다. 이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자신의 위상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고, 서로 얼굴을 대하고 사는 범위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공헌을 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사는 ‘지역’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배경이다. 고쓰시는 젊은 세대의 이런 가치관 변화와 지자체의 적절하고 유연한 지원 정책이 어우러져 성공을 이뤄낸 사례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운송망이 거미줄처럼 깔리고 통신비용이 낮아지면서 농산어촌이 갖는 지역적 불리함이 줄어든 것도 로컬 지향성이 심화되는 요인이다. 도쿠시마(德島)현의 산촌 가미야마(神山)는 로컬 지향성이 강한 정보기술(IT) 벤처 직원을 끌어들이고 있다. 2015년에는 도쿄 시부야에 본사가 있는 명함관리 소프트웨어기업 산산(sansan) 등 12개 IT 벤처의 위성사무실을 유치했다. 산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단 요이치는 아예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업무를 보는 틈틈이 인근 텃밭에서 농사일도 한다. 가미야마는 이들 기업에 사무실로 이용할 수 있는 고택을 소개하거나 이주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빈집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공용 개방공간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도움을 준다. 1955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던 마을 인구는 30세 전후 정주자가 늘면서 반세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저자는 이 밖에도 ‘아기 키우기 좋은 마을’과 ‘A급 맛 자랑 마을’ 프로젝트로 보육 복지 혜택과 일자리를 제공해 20~30대 여성을 끌어들인 시마네현 오난 마을, 2·3세 젊은 기업인이 협업과 개방을 통해 새로운 관광 자원을 창출해낸 도쿄 스미다 구,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화 전략으로 지역 특산물을 되살린 나가사키(長崎)현 하사미(波佐見) 마을 등 다양한 부활 모델을 보여준다. 지역 불균형 심화, ‘인구절벽’ 위기 등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는 “로컬 지향의 시대에는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기존 지역육성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며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지방이 보유한 고유 자원으로 매력을 창출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2000년대 들어 고쓰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입주자가 빠져나가 텅 빈 상점가에 젊은이가 하나둘 모이면서 상점가 리노베이션이 시작됐다. 이 지역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히라시타 시게치카는 빈 은행 점포를 카페 겸 술집으로 개조했다. 1층 구석 은행 금고를 사생활이 보장되는 카페의 개인실로 꾸미고 2·3층은 디자인 사무실을 만들었다. 30대 사회기업가 오노 히로아키는 폐업한 창고에 헌책방을 차렸다. 이 책방은 점차 번창해 직원이 스무 명까지 늘어났다. 이후 이 상점가에는 와인숍, 선술집 등 모두 15개 점포가 새로 들어서며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부활했다. 고쓰시는 창업을 희망하는 젊은 사람을 더 많이 불러모으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와 손잡고 2010년부터 매년 ‘비즈니스 플랜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입상자에게는 지역 인재를 소개하고, 인구 이탈로 생긴 빈집을 저렴하게 빌려주는 등 다양한 창업 지원 및 거주 편의를 제공한다. 도쿄 등 대도시에 살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고쓰시에 돌아온 청년들은 다양한 사업모델을 선보이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줄곧 줄어들던 인구도 증가세로 반전됐다.
마쓰나가 게이코 일본 오사카시립대 창조도시연구과 교수는 《로컬 지향의 시대》에서 ‘감소의 시대’에 쇠퇴하거나 소멸 위기에 처한 일본 소도시와 작은 마을들이 지역성을 살린 자신만의 생존법으로 부활하고 있는 현장을 취재해 상세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일본 사회에서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에 자라난 젊은 층 사이에 불고 있는 ‘로컬 지향성’에 주목해 지방을 초고령화·낙후지역 등 골칫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주도할 ‘희망의 싹’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지방 문제를 해결하자’는 도시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지방이 보유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 발전할 것인가’라는 지방 중심적 관점으로 지역 발전과 불균형 해소 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젊은 세대와 어린 자녀를 둔 세대를 중심으로 농산어촌 등 지방으로 이사하거나 이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로컬 지향성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원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 트렌드가 깔려 있다. 이들은 사회 시스템에서 자신의 위상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고, 서로 얼굴을 대하고 사는 범위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공헌을 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사는 ‘지역’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배경이다. 고쓰시는 젊은 세대의 이런 가치관 변화와 지자체의 적절하고 유연한 지원 정책이 어우러져 성공을 이뤄낸 사례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운송망이 거미줄처럼 깔리고 통신비용이 낮아지면서 농산어촌이 갖는 지역적 불리함이 줄어든 것도 로컬 지향성이 심화되는 요인이다. 도쿠시마(德島)현의 산촌 가미야마(神山)는 로컬 지향성이 강한 정보기술(IT) 벤처 직원을 끌어들이고 있다. 2015년에는 도쿄 시부야에 본사가 있는 명함관리 소프트웨어기업 산산(sansan) 등 12개 IT 벤처의 위성사무실을 유치했다. 산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단 요이치는 아예 거주지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업무를 보는 틈틈이 인근 텃밭에서 농사일도 한다. 가미야마는 이들 기업에 사무실로 이용할 수 있는 고택을 소개하거나 이주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빈집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공용 개방공간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도움을 준다. 1955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던 마을 인구는 30세 전후 정주자가 늘면서 반세기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저자는 이 밖에도 ‘아기 키우기 좋은 마을’과 ‘A급 맛 자랑 마을’ 프로젝트로 보육 복지 혜택과 일자리를 제공해 20~30대 여성을 끌어들인 시마네현 오난 마을, 2·3세 젊은 기업인이 협업과 개방을 통해 새로운 관광 자원을 창출해낸 도쿄 스미다 구, 세련된 디자인과 고급화 전략으로 지역 특산물을 되살린 나가사키(長崎)현 하사미(波佐見) 마을 등 다양한 부활 모델을 보여준다. 지역 불균형 심화, ‘인구절벽’ 위기 등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는 “로컬 지향의 시대에는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기존 지역육성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며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지방이 보유한 고유 자원으로 매력을 창출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