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갈 길 먼데… 거래소, 또 '낙하산 이사장' 오나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17일 사의를 밝혔다. 임기 3년 중 1년도 채우지 못한 시점에서다. 수장의 갑작스러운 사임에도 거래소는 평온한 분위기다. 이미 예정된 사퇴였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금융 실세’로 불렸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대통령 탄핵이 결정됐을 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주변에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거래소는 사실상 ‘휴업’ 상태나 다름없었다. 증시가 지긋지긋한 박스권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거래소 임직원들도 할 말이 많다. 정권이 바뀌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 추진은 전면 중단됐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주회사 전환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 추진을 놓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2005년 통합 거래소가 출범한 이후 벌써 12년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반민반관(半民半官)’이라는 태생적 한계도 나아진 게 없다. 거래소는 34개 증권사와 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세운 민간기업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미운털’이 박혀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재작년 공공기관에선 해제됐지만 여전히 공직유관단체로서 주요 현안마다 금융위원회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거래소의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거래소는 아직도 주식거래 수수료 등에 의존하는 단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10년 사이 3분의 1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적극적인 IPO와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글로벌 거래소들과 정반대다.

거래소는 후임 이사장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벌써 문재인 캠프에 몸담았던 ‘낙하산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업계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애초부터 거래소에 기대하는 게 없었다”며 “누가 이사장이 되더라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를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자본시장은 그만큼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높다. ‘낙하산 인사’로는 미래가 없다. 정부의 입김보다는 자본시장과 상장기업,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