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우파, 인터넷서 거리로
트럼프 당선 도운 후 목소리 커져…40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 선동
폭력성 드러낸 백인 우월주의
샬러츠빌서 차량 시위대 돌진…최근 25년간 60여건 테러행위
리더십 위기 직면한 트럼프
백인 우월주의자 두둔 발언으로 지지기반인 경제계·군부 등 돌려
'인종주의 균열' 봉합 미지수
시위는 이내 폭력으로 번졌다. 지난 12일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극우파 집회에 반대하는 진보단체의 거리 평화행진 도중 나치 추종자로 알려진 제임스 필즈가 차량을 몰고 시위대로 돌진했다. 1명이 죽고 19명이 다쳤다.
샬러츠빌 폭력 시위로 터져 나온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의 분열된 모습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수습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종주의를 ‘도발’하는 발언을 쏟아냈으며, 그 대가로 미국 주류의 핵심 세력인 경제계와 군부가 등을 돌리면서 심각한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연합
샬러츠빌 시위는 ‘우파여 연합하라(Unite the Right)’는 이름으로 모였다. 샬러츠빌 시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한 이날,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대안우파가 철거 반대 시위를 기획했다.
친(親)트럼프 대안우파 모임 ‘자랑스러운 소년들’ 멤버인 제이슨 케슬러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파 연합시위 포스터를 퍼뜨렸다. 또 다른 대안우파 정치 모임 ‘대안기사’를 비롯해 민병대, KKK, 신나치주의 등 전통 백인 우월주의 단체까지 합세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직접 차를 몰고 오거나 네바다에서 비행기를 타고 500명가량이 결집했다. 극우파 시위로는 40여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이날 시위에선 KKK의 상징인 흰색 두건과 망토는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극우단체가 이처럼 대담해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 영향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안우파 인터넷매체 브레이트바트를 만든 스티브 배넌을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지명하면서 대안우파 목소리가 커졌다는 얘기다.
대안우파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했다. ‘내셔널 폴리시 인스티튜트’란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리처드 스펜서(38)가 2010년 ‘대안적 우파’라는 이름의 웹진을 창간하면서 대안우파의 젊은 지도자로 등장했다.
대안우파는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끈 주요 지지세력으로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샬러츠빌 사태 발발 이틀 뒤에야 KKK와 신나치주의 단체에 책임을 물었다가, 다시 “두 편(대안우파와 그 반대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이들을 두둔했다.
이름 뒤에 숨겨진 폭력성
당초 샬러츠빌 시위의 목적은 보수단체가 연합해 힘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안우파가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과 밀접하게 연관되면서 순식간에 인종주의 시위로 변했다. AP통신은 대안우파라는 이름은 백인 우월주의, 신나치주의를 위장하고 젊은 층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역사상 극우세력의 집단 행동은 사회·경제적 압박이 컸을 때 나타났다. 남북전쟁 종전 이듬해인 1866년 결성된 KKK는 한동안 부침을 겪다가 1910~1920년대 회원 수가 수백만 명으로 늘면서 재기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나치주의 단체가 좌파와 유대인을 공격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민병대 형태의 과격한 극우파로 발전했다.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 테러로 168명의 사망자를 낸 티머시 맥베이 역시 클린턴 행정부의 브래디법(총기 규제) 실시에 반대한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반(反)비방연맹에 따르면 1993년부터 올해까지 극우주의자와 단체가 저지른 테러 행위 및 음모 시도는 150건으로, 이 중 43%가 백인 우월주의자, 42%가 반정부주의자, 11%가 낙태 반대주의자들에 의해 벌어졌다.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 논란
샬러츠빌 폭력 시위는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부연합 상징물을 ‘아름다운 동상’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2016년 기준 미국 전역에 남부연합 상징물은 700개가 있다. 1920년대 KKK가 재활약하고 인종 차별에 근거한 흑백분리법이 통과된 시기에 리 장군을 남부동맹의 상징이자 보수의 아이콘으로 추앙하는 세력이 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동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1960년대 진보좌파의 다문화주의 운동 이후 남부연합 상징물의 처지도 변했다. 흑인과 라틴계 국민들은 인종주의를 자극한다는 이유로 주정부에 남부연합 상징물 철거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교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 등 흑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잇따르면서 철거 논의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샬러츠빌 폭력 시위를 계기로 볼티모어 시 등 각 지방정부들은 철거 작업을 더욱 서두르고 있다.
트럼프 리더십 위기 직면
트럼프 대통령이 폭력 시위를 주도한 백인 우월주의자를 두둔한 것은 백인 중심 정체성을 강조해온 본인 신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극우 지지층 결집과 러시아 스캔들 관련 국면 전환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가가 너무 크다. 양대 지지기반인 군부와 기업계가 이탈 행렬을 이어가면서 취임 7개월 만에 최대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가장 큰 손실은 누구보다도 우군 역할을 해온 월가 거물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마저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서자 월가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전략정책포럼, 제조업위원회, 인프라위원회 등 3개 대통령 경제자문단이 줄줄이 해산했다. 월가 유대인을 대표하는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의 사퇴설까지 불거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친 시장 정책 추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백악관은 대안우파의 사령관 역할을 해온 배넌 수석전략가의 경질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미 커져 버린 ‘트럼프호’의 균열이 봉합될지는 미지수다. 배넌은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로 복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을 향해 “가짜뉴스는 경쟁이 필요하다”며 백악관 밖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줄 것을 주문했다.
■ 대안우파
Alt-right, Alternative right. 미국 주류 보수주의의 대안으로서 제시된 극우세력의 한 부류. 주류 보수주의가 자유방임주의에 기반해 작은 정부와 낮은 세율 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대안우파는 백인 남성 중심의 정체성을 중시하며 반(反) 다문화주의 등을 내세운다. 한 가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백인우월주의, 국수주의, 우익 포퓰리즘, 반 유대주의 등의 요소가 섞여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력이 확산됐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