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광주고등법원 민사1부는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원 네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원 패소 판결을 내렸다. 노조원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으로, 재판부는 “노사 합의를 깬 통상임금 소송은 신의칙(信義則)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또 “근로자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이익을 추구해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금호타이어 노조원들은 회사가 경영난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던 2013년 7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휴일수당 등을 다시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비슷한 형태의 통상임금 소송에 휘말려 있는 기아자동차와 한국GM 등 200여 개 기업은 이번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항소심을 주시해 왔다. 노사 합의의 토대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이 앞으로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서 얼마나 폭넓게 인정될지를 가늠할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기업들은 줄곧 노사 합의에 따라 통상임금을 산정해 왔는데 노조가 ‘말 바꾸기’를 통해 신뢰기반을 무너뜨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의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노사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고 합의했고 △근로자의 청구를 인용하면 중대한 경영 애로가 초래될 경우에는 신의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통상임금 확대 청구를 제한했다. 그러나 1심 법원에서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을 조금씩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국내외 판매 감소로 위기를 맞은 자동차업계는 빠르면 이달 말 있을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소송 규모가 최대 3조원으로, 판결에 따라선 당사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은 물론 5000여 개 부품 협력업체들도 타격을 입게 된다. 쟁점은 금호타이어 소송과 마찬가지로 신의칙 인정 여부다.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신의칙에 대한 1심 판결이 계속 엇갈려서는 곤란하다. 이로 인해 산업현장은 몸살을 앓고 있다. 광주고법 판결에서 보듯 고법 재판부에서 신의칙을 폭넓게 인정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