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항공사 직원, 이거 실화냐?
추석 황금연휴를 앞두고 항공사 직원들은 잦은 ‘민원’에 피로감이 쌓여간다. 5~6월 징검다리 연휴를 시작으로 여름 성수기까지 주변 지인으로부터 항공권 문의가 빗발치고 있어서다. 일부 항공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무제한 항공권’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빈자리가 생겨야 떠날 수 있는 비확약 티켓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승무원들은 오히려 각양각색의 ‘진상’ 손님을 만나 곤욕을 치른다. 치근덕거리는 남자 손님은 약과다. 가족 여행객이 몰리는 휴가철이 되면 우는 아이까지 떠맡는 베이비시터 역할까지 해야 한다. 고액 연봉을 받고 해외 항공사로 이직하는 조종사가 급증하면서 국내 직원들은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조종사로서 ‘품위’까지 지키라고 하니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 항공사 남녀 직원의 스캔들이 퍼지면서 억울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공짜 티켓?’ 내 몫은 없다

[김과장&이대리] 항공사 직원, 이거 실화냐?
다른 업종에서 항공사 직원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원 우대 항공권’이다. 직계 가족이면 항공권 가격의 10%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제주항공은 직원들에게 1년에 99장의 항공권을 제공한다. 사실상 무제한이다. 다만 항공사별로 조금씩 다르게 운영한다. 직계 가족에 조부모나 손자, 손녀를 포함하기도 하고 지정한 친구 1~2명까지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

국제적으로도 항공사 간 직원 탑승에 대한 할인 협약(ZED: zonal employee discount)이 맺어져 있어 광범위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주말이면 가족과 가까운 해외를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항공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정작 업무 강도가 높아 실제 이용은 직원이 아니라 가족만 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A항공사 승무원은 “늘 무거운 가방에 짐을 싸서 해외에서 지내다 보니 시차 적응이 힘들고 기내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건강도 안 좋아져서 휴가 때는 보통 국내에서 지낸다”며 “직원 우대 항공권은 대부분 가족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 우대 항공권의 단점은 불확실성이다. B항공사 한 간부는 휴가를 맞아 가족을 이끌고 직원 우대 항공권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해 공항까지 나왔다가 막판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예약이 없어 빈자리 5석을 맡아놨는데, 이륙 직전에 현장에서 판매됐기 때문이다. 항공사 관계자는 “예약 스케줄을 보고 분명히 빈자리로 이륙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갑자기 현장 구매나 예약 변경으로 자리가 차는 사례가 많다”며 “아무리 오랫동안 항공사에 종사한 사람이라도 자리가 남을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항공사 직원들에게 7~8월 극성수기 때 해외여행은 ‘그림의 떡’이다. A항공사 승무원은 지난해 여름 자사 항공편을 100% 시장 가격으로 구매해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몇 차례 직원 우대 항공권을 사용하려고 시도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마음 편히 다녀오려면 그냥 사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똥기저귀 건네는 승객

최근 국내 한 저비용항공사(LCC) 게시판에는 대변 기저귀를 승무원에게 떠맡긴 승객이 논란이 됐다. 얘기는 이렇다. 2~3세로 보이는 아이와 부부가 항공기에 탑승했다. 한 승무원은 기내식 서비스를 마치고 쟁반을 수거하러 가던 도중 선반 위에 놓인 기저귀를 발견했다. 식사를 마친 쟁반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기 아빠는 승무원에게 “기저귀도 같이 치워주세요”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고 기내 좌석에서 대변 기저귀를 교체한 뒤 승무원에게 처리해달라고 한 것이다. 승무원은 “탑승하자마자 아기를 위한 봉투, 티슈 등을 제공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를 본 다른 승무원은 “아기 엄마가 따뜻한 소변이 담긴 종이컵을 건넨 적도 있다”고 했다.

우는 아이를 아예 승무원 품에 맡기는 손님도 있다. 다른 승객들이 시끄러워하니 다른 곳에 가서 애를 달래달라는 부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이 제대로 익지 않았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모기업 라면 상무’부터 미국 팝스타 리처드 막스가 공개해 세상에 알려진 ‘안하무인 취객’까지 갈수록 진상 수준이 진화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조종사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중국 일부 항공사에서 고액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경쟁이 가속화하자 국내 항공업계는 조종사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 조종사는 “사람이 부족해 업무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밀려드는 소개팅 제안…정작 연애는 힘들어

미혼인 승무원들에게는 ‘승무원’ 직업 하나만으로도 소개팅이 빗발친다. 대형 항공사에 다니는 승무원 이모씨(29)는 소개팅이라면 질색부터 한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를 즐겼지만, 좋은 것도 한두 번이었다. 먼저 소개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친구가 승무원과 소개팅하고 싶다는데 한 번 만나보라”고 부추기는 경우가 많아 하나둘 만나다 보니 끝이 없었다. 더구나 상대방은 대부분 승무원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갖고 있어 부담을 느낀 적이 많았다. 이씨는 “승무원은 무조건 예쁘고 상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며 “가끔은 품평회를 나왔나 싶어 속상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비행 중 승무원 명찰에 적힌 이름을 보고 먼저 연락하는 남자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한 LCC 승무원은 “주변에 항공사 다니는 사람을 수배해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며 “모르는 사람에게 카카오톡이 올 때 개인정보가 쉽게 노출됐다는 사실에 섬뜩했다”고 설명했다.

수많은 구애(?)에도 정작 승무원 중에는 업무 환경 때문에 연애를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승무원 박모씨(32)는 국제선 비행을 다니고부터 연애하는 게 어려워졌다. 비행 스케줄 때문에 외국을 많이 나가다 보니 시차가 맞지 않아 연락이 뜸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박씨는 “일반 직장인에 비해 업무시간이 규칙적이지 않아 메신저 같은 소소한 연락도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주변에서도 이런 식으로 상황이 엇갈려 헤어지는 경우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에서 박씨는 입사 이후 이상형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이해심이나 배려심이 좋은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다고 한다. 최근 국내 한 항공사에 불거진 자살 사건은 항공사 직원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재원/안대규/정지은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