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보복’이 시작된 걸까.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의 대형 자산운용사가 디젤차량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얼룩진 독일 자동차 업체에 투자 중단을 결정했다. 벨기에 자산운용사도 조만간 가세할 태세다.
'배신의 대가' 치르는 독일차…미국·유럽 자산운용사들 발 뺀다
스캔들 당사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디젤차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4선 여부가 결정되는 총선(9월24일)을 앞두고 있다.

◆잇따르는 투자 금지 조치

2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유니온인베스트먼트, 에르스테, 아카디안 등 3개 펀드운용사가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투자를 금지했다. 유럽연합(EU)의 반독점 규제당국이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BMW 다임러 등 5개 회사의 반독점 행위 혐의를 조사하면서다.

이들 회사는 1990년대부터 디젤차의 배출가스 정화장치를 비롯해 기술 및 부품, 공급업체와 관련해 담합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질소산화물을 정화하는 핵심 장치인 요소수(애드블루) 탱크 크기를 줄이도록 담합한 점이다. 요소수탱크 크기가 작을수록 정화 기능은 떨어지는 반면 원가는 절감된다.

독일의 3대 펀드운용사인 유니온인베스트먼트(자산 규모 3000억유로)는 이달 들어 “소송 리스크가 커졌다”며 자사 사회책임투자펀드의 다임러 투자를 금지했다. 300억유로 규모에 달하는 사회책임투자펀드는 지속가능경영 등 비재무적 요인을 고려해 투자를 판단한다.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이 불거진 폭스바겐 투자도 중단한 상태다.

오스트리아 에르스테그룹과 미국 아카디안자산운용은 사회·환경 문제 등을 고려해 투자를 결정하는 모든 펀드에서 독일 자동차업체 투자를 전면 금지했다. 독일 최대 자산운용사인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자산 규모 7110억유로)와 벨기에 칸드리암(자산 규모 1000억유로)도 투자 중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디젤 게이트’

디젤 게이트는 2015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배출 조작 사건에서 불거졌다. 미국 법무부는 배출가스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불법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폭스바겐에 올초 43억달러(민사소송 관련 비용 15억달러 포함)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판매하는 독일 다임러그룹도 배기가스 조작장치 설치 혐의를 받아 독일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다임러는 지난해 트럭 제조사와의 가격담합으로 11억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 이후 디젤차 인기는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디젤차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해 ‘친환경 자동차’로 인기를 누렸지만 호흡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이산화질소 배출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올 2분기 유럽 주요국 내 디젤차 판매 비중은 47.2%로 1년 전의 51.6%에 비해 낮아졌다. 디젤차 수요가 가장 높은 영국에서도 신규 등록차의 디젤차 비중(42.5%)이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메르켈 “디젤차 포기 못해”

환경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유럽 국가들은 디젤차 판매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부터 디젤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최대 수출품인 디젤차 판매가 전면 중단되면 독일 경제가 받는 타격은 상당하다. 자동차산업이 독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이며 독일 내 관련 일자리만 80만 개에 이른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이날 발간된 월간 보고서를 통해 “디젤차 위기가 중기적으로 독일 경제 발전의 새로운 위험 요소로 분류돼야 한다”고 말한 배경이다.

다음달 총선을 앞둔 독일에선 디젤차 게이트가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메르켈 총리의 경쟁자 마르틴 슐츠 대표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은 정부가 디젤차 문제 대응에 미흡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추격하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은 2030년부터 독일에서도 디젤차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 차업계를 대변해 온 메르켈 총리는 “기후변화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디젤차가 여전히 필요하다”며 정면대응에 나섰다. 그는 지난 20일 RTL방송에서 “독일 차업계는 소비자에게 최대한 보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