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에코 판타지아’
국립현대미술관 ‘에코 판타지아’
지난 19일 오전 9시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 도로. 운동복 차림을 한 200여 명의 사람들이 출발 신호가 울리자 힘껏 뜀박질을 시작했다. 광화문광장, 청계천 일대 5㎞를 달려 다시 서울관으로 돌아온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술 관람객으로 변신했다. 전시회인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7’ ‘크지슈토프 보디츠코-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불확정성의 원리’를 관람하며 땀을 식혔다.

‘보는 것’을 넘어 ‘체험’하는 미술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미술관과 화랑들이 스포츠, 음악감상, 영화관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시 관람과 접목하는가 하면, 작가와 점심을 함께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쉼터, 공공성, 예술 실천에 역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달 초 미술관과 스포츠, 공연, 영화를 결합한 아트 마케팅상품 ‘에코 판타지아’(오는 30일까지)를 내놓았다. 미술관의 ‘쉼터, 공공성, 예술 실천’을 내세운 체험형 이벤트로 관람객을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관람객들이 요가, 댄스, 트레이닝을 체험하고 전시장을 둘러보거나, 미술관 주변 도로를 달리고 나서 그림을 감상하는 식이다. 전시장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시각미술 변천사’를 주제로 한 캐나다 영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26일 서울관에서는 예술과 스포츠, 콘서트가 결합한 문화체험 행사 ‘아트앤스포츠 데이’를 열 예정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제는 미술관이 국민을 계몽하던 시대와는 달라야 한다”며 “체험 프로그램으로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면서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의 런치’
서울시립미술관 ‘예술가의 런치’
야간에도 관람객 모아

서울시립미술관은 시각예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뮤지엄 나이트’와 ‘예술가의 런치’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뮤지엄 나이트는 미술관 야간 개장 때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프로그램. 매달 둘째 주 수요일과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연다. 2012년부터 운영한 야간 개장 프로그램 ‘뮤지엄 데이’를 ‘뮤지엄 나이트’로 명칭을 바꾸고 ‘음악으로 듣는 전시’ ‘큐레이터가 직접 소개하는 전시’ ‘영화로 확장해서 즐겨 보는 전시’ 등을 기획해 어렵고 딱딱한 미술관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여는 ‘예술가의 런치’는 현대미술에 다가서기 힘들어하는 관람객을 작가와 직접 연결해준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함께 보고 식사를 하며 그림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특별 초청한 셰프가 프로그램의 주제로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융합형 전시로 유명한 사비나미술관은 오는 31일 개막하는 사진작가 이명호의 개인전에 ‘브런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큐레이터와 브런치나 점심을 나누며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갤러리현대·가나아트센터·국제갤러리 등 굵직한 화랑들도 전시장에 고급 레스토랑을 배치했다. 예술과 별미를 함께 즐기고 싶어 하는 관람객을 타깃으로 ‘맛있는 전시공간’을 꾸며 주목받고 있다.
대림미술관 ‘2017 시즌 파티-더썸머하우스’
대림미술관 ‘2017 시즌 파티-더썸머하우스’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말을 걸다

다양한 음악, 독특한 퍼포먼스로 감각적인 파티문화를 접목한 미술관도 있다. 대림미술관은 2012년 ‘스와로브스키, 그 빛나는 환상’전에서 처음 파티 마케팅(겨울의 꿈)을 선보였다. 작년 여름 1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파티 ‘굿나잇 라이브’를 마련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현재 진행 중인 전시회 ‘더 셀비 하우스# 즐거운 나의 집’과 연계한 ‘2017 시즌 파티-더썸머하우스’를 열었다.

20~40대 젊은 층은 미술관과 화랑의 이 같은 파격적인 변화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술애호가 한창은 씨는 “고급스러운 미술문화가 라이프스타일이나 음악, 영화 등 대중적 장르와 어우러져 쉽고 재미있게 다가왔다”며 “미술관이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국민놀이터’로 거듭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