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의 고속 경제성장을 이끌어오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활동이 이들 국가 경제에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의 인구 동태적 변화와 경제 행동은 미국과 일본 내 임금, 물가, 금리, 금융 등 거시경제 지표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왜곡 현상까지 낳는다. 미국과 일본에서 고용이 늘고 실업률이 낮아지는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물가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베이비부머의 경제 활동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는 현재 전체 인구의 4분의 1(7000만 명)을 차지한다. 2011년부터 매달 25만 명씩 은퇴하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부머는 ‘단카이(團塊) 세대(1947~1949년생)’를 지칭한다. 일본 전체 인구 중 5.4%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부분 은퇴했다. 일본의 70세 이상 인구 비율은 전체의 19%가량이다.
미국·일본 베이비부머의 비애… 성장 주역에서 '돈맥경화' 주범으로
◆‘예금의 1%만 돌아도…’

지난 8일 일본은행(BOJ)이 발표한 일본 시중은행 예금잔액은 684조엔에 달했다. 전년 말 대비 4.5% 증가한 수치다. 신용금고나 장롱 속 예금을 합하면 1000조엔을 훨씬 넘는다. 사실상 제로(0) 금리가 유지되고 있는데도 예금이 늘고 있다.

이 같은 예금 중 60% 이상이 베이비부머를 비롯한 고령자들의 예금이다. 고령자들은 연금으로 받는 돈 등을 대부분 예금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이나 융자 증가율은 3%대에 머무르면서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이 평균 70%대에 그치고 있다.

일본 은행들은 채산에 맞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저리 융자에 매달리고 있다. 그럴수록 은행 수익성은 나빠진다. 은행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국채를 다량 매입해 시중에 돈을 풀어(양적완화)도 개인 소비와 주택 구입, 기업 설비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예금이라는 형태로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이런 예금의 1%인 10조엔만 이들 분야로 돌아도 경기 활력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은퇴가 임금상승 막아

미국 실업률이 4.3%로 16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은 고임금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보도했다.

WSJ는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고임금을 받는 베이비부머가 은퇴하고 있지만 저임금 노동자들은 새로운 정규직으로 갈아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최근 보고서에서 경험이 적고 임금이 낮은 노동자들의 고용이 많은 게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난해부터 베이비부머들이 의무연금을 받기 시작해 이들 연금의 향방도 미국 경제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당국들은 대응책 고심

미국과 일본 경제당국은 베이비부머의 경제 행동을 눈여겨보면서 경제 운용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장 이들이 소비에 적극 나서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일본 정부가 노인 돌봄에 자기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소득이 많은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려 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미국 정부도 노인들이 소비를 늘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소비 부진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아 Fed와 BOJ가 각각 목표로 하는 물가상승률(2%)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연금이나 사회보장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 베이비부머의 경제 영향력이 앞으로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