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기업 구조조정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 박상은 EY한영회계법인 전무,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기업 구조조정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민간이 주도하는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 박상은 EY한영회계법인 전무, 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서울시립대 교수),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저성장 시대를 맞아 한계기업이 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기술 혁신으로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잘나가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일도 잦다. 선제적 구조조정이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한국경제신문은 23일 한국증권학회와 공동으로 ‘기업 구조조정 좌담회’를 열었다. 새 정부에 구조조정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이날 좌담회에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정용석 산업은행 구조조정부문 부행장, 정장근 JKL파트너스 대표, 박상은 EY한영회계법인 전무가 참석했다.

▷사회=지금 왜 구조조정이 화두인가.

▷정용석 부행장=새 정부의 중점 과제가 일자리다. 일자리 확충을 위해선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 상시적인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경제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한정된 자원이 성장성 있는 사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

▷윤창현 교수=동의한다. 일자리 문제와 구조조정은 관계가 깊다. 기업이 상시적·선제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파산하면 부실이 금융회사로 전이된다. 그런 기업이 늘어나면 부실이 커져 금융시장이 고장 난다. 그 파장은 경제 전체로 퍼져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진다.

▷박상은 전무=1997년 외환위기는 간판 대기업들의 유동성 위기였다. 정부가 유동성을 풀어 회복이 가능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산업계 전체적으로 공급 과잉이 지속되고 있다. 부실이 심화되기 전에 산업 측면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정장근 대표=기술 발전으로 산업 구조가 급변하면서 요즘은 잘나가던 상장사 매출이 어느날 갑자기 ‘제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기존에는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채무재조정 등 재무적인 것을 주로 말했지만 이제는 사업 구조조정이 핵심이다.

▷사회=구조조정 방식도 중요하다. 채권은행 주도로는 한계가 있다.

▷정 부행장=그렇다. 1990년대는 은행이 기업 자금조달의 중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은행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기업 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채권이 생기고 이해당사자 간 합의 도출도 어려워졌다. 미래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 시장 확대가 시급하다.

▷사회=구조조정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인데.

▷윤 교수=조지 클루니 주연의 ‘업인디에어(up in the air)’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해고 통지 대행이다. 회사를 대신해 해고를 통지하는 일이다. 미국 구조조정산업이 얼마나 촘촘하게 발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국도 구조조정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정 대표=요즘 중소·중견기업 창업주들은 저성장과 산업구조 개편 등으로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내심 회사를 팔고 싶어 한다. 대기업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생각하는 시기와 규모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때 모험자본인 사모펀드가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인수 후 기업가치를 올려서 재매각하는 업의 본질에 충실하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된다. JKL파트너스가 포장테이프 제조업체 테이팩스를 인수해 전자부품용 테이프 업체로 변화시킨 뒤 되판 게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자본시장과 은행권 간 긴밀한 협력도 필요할 것 같다.

▷정 부행장=물론이다. 은행들이 좋은 기업은 시장에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는 우려가 있다. 그럴 만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담당 은행의 성과 평가, 두 번째는 책임 부담 문제다. 구조조정 기업을 팔면 감사기관이 차후에 “왜 헐값에 팔았냐”며 책임을 추궁한다.

▷윤 교수=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정부는 제너럴모터스(GM)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에게 면책부터 줬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취지다. 우리나라는 결과가 안 좋으면 무조건 감사원 감사를 받고 국회에서 책임을 추궁당한다. 판단 당시 가능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 성실하게 결정을 내렸다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책임을 면하게 해줘야 한다.

▷박 전무=대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규모가 큰 만큼 민간 자본시장이 혼자 소화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은행과 사모펀드들이 협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모펀드들은 유상증자, 은행은 신규 대출 등을 통해 자금을 함께 지원하고 정상화를 추진하는 식이다. 투자 위험과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다.

▷사회=정부가 신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는데.

▷박 전무=8조원 규모의 신기업구조조정 펀드 조성 계획이 골자다. 한국성장금융이 운용하는 모(母)펀드가 총 4조원을 출자해 민간 운용사가 운용하는 구조조정 자(子)펀드에 1 대 1로 매칭해주는 방식이다. 자본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이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이다.

▷윤 교수=이스라엘에는 요즈마라는 벤처펀드가 있다. 민관 합동 펀드인데 주가가 오르면 민간 부문이 정부 지분을 싸게 사올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런 세련된 유인 체계를 만들어주면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시장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다.

▷정 대표=구조조정 펀드의 투자 대상을 법정관리 등 이미 어려워진 회사가 아니라 선제적 사업 구조조정으로 넓혀주면 꼭 운용해보고 싶다. 다만 이미 국민연금 등의 돈을 받아 블라인드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경험 많은 운용사들은 기존 펀드 약관상 추가로 구조조정 펀드 운용을 맡기 어렵다는 기술적 문제도 있다.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정리=유창재/김태호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