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서류는 인터넷에서 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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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신청 좌절당한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쉬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은 우릴 불행케 해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쉬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은 우릴 불행케 해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갑작스레 생소하기 짝이 없는 미션에 맞닥뜨렸다. 이 미션은 관리센터의 안내에 따라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 공기관 등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각종 신청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담당 상담원을 통해 해야 할 업무 안내를 받았다. 듣다 보니 떼야 할 서류의 종류만도 보통이 아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힘차게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제출해야 할 서류가 한둘이 아니다. 이름도 외우기 힘든 서류를 대체 어디서 받아온단 말인가. 은행에 다시 전화를 걸어 정중히 물었다. “서류를 어디서 찾으면 될까요?” “인터넷에서 떼시면 됩니다.” “인터넷 어디요?” “네, 사이트 접속해서 찾아보시면 아마 나올 겁니다.”
선문답 같은 통화를 마치고 ‘아마 찾아보면 나올 것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한참을 뒤진 끝에 한쪽 구석 깊은 곳에 있는 문서 다운 섹션을 드디어 찾아냈다. 클릭하고, 정보를 입력하고, 다운 버튼을 누르자 실행프로그램이 없으니 프로그램을 깔라는 명령어가 뜬다. 역시 그럼 그렇지. 프로그램을 다운 및 실행한 뒤 다시 한 번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문서 출력 버튼을 클릭한다. 이번엔 문서 출력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으니 내려받으라는 명령어가 뜬다. ‘왜 사냐 건 웃지요’의 문제다. 서서히 지쳐 간다. 하지만 집요하고 집중력 있는 태도로 한 장의 서류를 비로소 얻어낸다. 다음 사이트에 접속해 이런 순서를 종일 무한반복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더 큰 절망의 순간이 나를 기다린다. 거의 하루 종일을 투자해 상담원과의 통화를 마친다. 통화의 핵심 요지는 내일 담당자의 확인 전화. 그러나 다음날 전화는 오지 않는다. 울리지 않는 전화를 노려보다 지친 나는 전화를 건다. 긴 대기시간을 거쳐 드디어 전화 연결에 성공. 그러나 나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고객님의 담당자는 오늘 휴가입니다.”
그렇게 3일째 분노를 넘어선 체념에 빠진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를 떠올렸다.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예순을 앞두고 심장병으로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된 영국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온 그는 잠시 동안 질병급여를 신청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현실은 냉혹하다. 그는 질병급여 ARS 확인에서 탈락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라는 안내원의 추천을 따르고자 애썼으나 ‘모든 서류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라’는 벽 앞에서 무너진다. 그는 컴퓨터가 없다. 인터넷도 쓰지 않는다. 아내는 죽었고, 자식이 없기에 도와줄 가족도 없다. 그러나 국가는 그에게 ‘신청은 인터넷으로’라는 말을 반복한다.
3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나는 결국 해냈다. 당연하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젊고, 인터넷 기반의 환경에 익숙하고, 각종 모바일 기기의 활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그러한가? 지난 3일간 “과연 이것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활용 가능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 보인다. 사회 전반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첨단 기술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사용 가능할 때 빛을 발한다. 그렇지 못한 기술은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고 때론 사람을 불행하게 하기도 한다. 방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문화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선문답 같은 통화를 마치고 ‘아마 찾아보면 나올 것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 한참을 뒤진 끝에 한쪽 구석 깊은 곳에 있는 문서 다운 섹션을 드디어 찾아냈다. 클릭하고, 정보를 입력하고, 다운 버튼을 누르자 실행프로그램이 없으니 프로그램을 깔라는 명령어가 뜬다. 역시 그럼 그렇지. 프로그램을 다운 및 실행한 뒤 다시 한 번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문서 출력 버튼을 클릭한다. 이번엔 문서 출력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으니 내려받으라는 명령어가 뜬다. ‘왜 사냐 건 웃지요’의 문제다. 서서히 지쳐 간다. 하지만 집요하고 집중력 있는 태도로 한 장의 서류를 비로소 얻어낸다. 다음 사이트에 접속해 이런 순서를 종일 무한반복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더 큰 절망의 순간이 나를 기다린다. 거의 하루 종일을 투자해 상담원과의 통화를 마친다. 통화의 핵심 요지는 내일 담당자의 확인 전화. 그러나 다음날 전화는 오지 않는다. 울리지 않는 전화를 노려보다 지친 나는 전화를 건다. 긴 대기시간을 거쳐 드디어 전화 연결에 성공. 그러나 나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고객님의 담당자는 오늘 휴가입니다.”
그렇게 3일째 분노를 넘어선 체념에 빠진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를 떠올렸다.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예순을 앞두고 심장병으로 잠시 일을 그만두게 된 영국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해온 그는 잠시 동안 질병급여를 신청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현실은 냉혹하다. 그는 질병급여 ARS 확인에서 탈락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라는 안내원의 추천을 따르고자 애썼으나 ‘모든 서류는 인터넷으로 신청하라’는 벽 앞에서 무너진다. 그는 컴퓨터가 없다. 인터넷도 쓰지 않는다. 아내는 죽었고, 자식이 없기에 도와줄 가족도 없다. 그러나 국가는 그에게 ‘신청은 인터넷으로’라는 말을 반복한다.
3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나는 결국 해냈다. 당연하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보다 젊고, 인터넷 기반의 환경에 익숙하고, 각종 모바일 기기의 활용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그러한가? 지난 3일간 “과연 이것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보는 차고 넘치는데 활용 가능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 보인다. 사회 전반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첨단 기술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사용 가능할 때 빛을 발한다. 그렇지 못한 기술은 시간과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고 때론 사람을 불행하게 하기도 한다. 방향성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문화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