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난데없는 '이부진 등판설'…"삼성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25일. 1심 공판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오후 3시에 블룸버그통신이 재판 관련 기사를 하나 올렸다. 제목은 ‘찾아내기 어렵지 않은 삼성의 새로운 선장(Samsung’s next chief hides in plain sight)’. “삼성전자가 오너 일가 중 한 명을 이사회에 올린다면 이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주목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 사장이 33억달러 가치의 호텔신라 경영을 통해 이미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시간이 지나자 블룸버그통신을 인용한 국내 언론들의 기사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이 사장이 그룹 경영을 맡을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이었다. 그 근거를 물었다. 우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고위 임원은 “억울하게 도둑으로 의심받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이 도둑이 아닌 증거를 대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나”라는 말부터 했다. 이어 “삼성에 2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100이면 100 모두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얘기할 것”이라며 “삼성의 경영 시스템과 기업문화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기사”라고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직접 낙점한 후계자다. 이 사장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평소 “오빠를 존경한다”는 얘기를 자주 할 정도로 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이 사장이 블룸버그 보도를 봤다면 크게 역정을 냈을지도 모른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이 회장이 회장직을 사임한 2008년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온다는 얘기도 나왔다. 사임 직후 삼성그룹은 ‘새로운 오너 일가의 등장’이 아니라 사장단협의회 등 집단경영 체제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삼성의 위기를 너무 느슨하게 본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 사장은 그동안 호텔신라 경영에만 주력해 왔기 때문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그룹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사를 분명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인 이 사장은 지금까지 삼성전자 경영에 단 한 번도 관여한 적이 없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선 오히려 전문경영인이 자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왜 이런 얘기가 나오느냐”는 질문에 한 관계자는 “투기세력의 농간일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호텔신라 우선주의 주가를 조종해 단기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호텔신라 우선주의 하루평균 거래대금은 300억원을 밑돈다. 큰 자금을 들이지 않고도 주가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종목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게 실형이 떨어진 뒤 호텔신라 우선주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며 “‘이부진 등판론’이 허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안재석 산업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