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임청각과 도산서원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이 언급되면서 생가인 경북 안동 임청각은 하루 평균 10명 내외였던 방문객이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모든 가산을 처분해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석주 선생과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 임청각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직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 됐다.

석주 선생은 18세에 퇴계 이황의 학통을 계승한 한말(韓末)의 대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서산 김흥락 선생(1827~1899)의 제자가 된다. 서산 선생은 《입학오도(入學五圖)》라는 책을 통해 ‘뜻을 세워야 하고, 예의가 바르고, 이치를 잘 따져야 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학문의 4대 기본원칙을 제시한 인물이다.

서산 선생의 이 같은 실천정신은 퇴계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퇴계는 도학 정치의 이념을 실현하려던 선비들이 사화로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올바름이 의롭지 못함을 제어할 수 있는 실천철학을 강조하게 된다. 그 때문에 퇴계학을 계승한 유림이 임진왜란부터 한말에 이르는 의병운동에 앞장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장을 지낸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안동 혁신 유림의 실천정신은 낙동강 상류 도산서원에서 퇴계학의 이름으로 발흥했고, 강을 따라 영남의 실천정신으로 이어졌다. 낙동강 본류의 시작점에 있는 임청각은 도산서원을 휘감고 흘러가는 도산구곡의 물길뿐만 아니라 학문과 정신까지 받아들였다”고 평가했다. 퇴계학은 안동 혁신 유림을 위시한 영남 사림의 지주중류(砥柱中流)로 기능했다.

퇴계학 계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2년 컨테이너에서 224명의 연수생으로 시작한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현재 2개 동의 현대식 연수시설을 장만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13만 명이 연수할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에서는 연간 3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해 퇴계학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힘써 돕고 있다.

마침 문 대통령 경축사를 계기로, 정부도 온 국민 앞에서 일제가 독립운동 정신을 말살하고자 가설한 중앙선 철길을 2020년까지 걷어내고 임청각을 복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정책 의지는 말의 성찬이 아니라 재원으로 담보돼야 한다. 퇴계학의 실천정신이 임청각에서 더욱 꽃필 수 있을지 ‘2018년도 정부 예산안’이 기대된다.

김광림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glkim@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