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미FTA 개정협상, 무엇이 두려울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신경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 회의는 이른 시일 내에 개정협상을 요구하는 미국과 개정협상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한국이 팽팽하게 맞섰다. 무역수지 적자를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의 주범으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 FTA 개정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개정협상을 통보받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번 공동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그간의 한·미 FTA 성과를 평가하자는 제안을 던졌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 FTA 개정협상 국면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번째 대권에 도전한 2012년,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ISDS)을 독소조항으로 지목하면서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미 FTA 이야기만 나오면 수세적이 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미국의 개정협상 요구에 한·미 FTA가 호혜적이라는 주장 속으로 숨는 한국 정부의 방어 전략은 그리 효과적일 것 같지 않고, 더구나 그간 제기해온 한·미 FTA의 문제 조항들을 손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많은 경제정책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문재인 정부가 통상정책만큼은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무엇이 두려울까.

미국이 먼저 한·미 FTA 개정협상을 꺼낸 것이 한국엔 기회일 수 있다. 그 기회는 문재인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자리 만들기와 연계돼 있다.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가 설치되고, 청와대에 일자리수석이 새로 만들어지고, 일자리 상황판이 집무실에 설치될 만큼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 정부의 명운이 걸린 일이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어 낸다는 공약 실천만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문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을 터이다.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을 마중물 삼아 ‘소득주도성장’으로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것은 ‘증세 없는 복지’ 공약만큼이나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크다. 제대로 된 해법은 일자리와 통상을 연계하는 것이고, ‘서비스 빅뱅’은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 수많은 일자리가 숨어 있는 서비스산업의 문턱을 낮추고 울타리를 치우는 일이다.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이지만, 제조업이 만들어 내는 일자리는 전체 고용의 4분의 1 수준이다. 절대다수의 일자리는 서비스업에서 만들어진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로만 서비스업 시장을 한정하는 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을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소비공간, 생활공간, 교육공간, 문화공간, 의료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미 FTA 개정협상을 통해 문화, 교육, 관광, 의료 등 서비스산업에서의 칸막이를 치우고 울타리를 뽑아내 혁신의 바람을 불게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저항과 반발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규제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관료들과 그 규제의 혜택을 누려온 기득권의 반대는 현 정부의 어법을 빌리면 ‘적폐’이고, 극복과 청산 대상이다. 당장의 피해를 걱정하는 자영업자 목소리도 거셀 것이다. 서비스 빅뱅이 거대 자본의 영세자영업자 생존권 위협이라는 구도로 인식된다면 포용적 성장의 가능성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한 집 건너 치킨집, 편의점, 커피가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화상태인 음식업, 도소매업, 숙박업 등에서 힘겨워하는 영세자영업의 생존권을 진정으로 우려한다면 그들이 성장사다리를 탈 수 있도록 판을 키우고 지원하고 동시에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합리적인 건강한 정책이다.

서비스 빅뱅은 비전과 전략, 소통이 요구되는 기득권 적폐청산이며 역동성을 상실한 채 시들어 가는 한국 경제의 회생 작업이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한·미 FTA 개정협상을 요구할 때 한국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서비스 빅뱅의 기회로 개정협상을 활용하는 전략적 비전을 세운다면 그 무엇을 두려워하랴. 제조업 수출 중심의 밀어내기 통상패러다임을 넘어, 서비스 혁신의 토대 위에 끌어들이기 통상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를 한국은 잡을 수 있을까.

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byc@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