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불안해서…" 밥상 수난시대, 소비자는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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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뭄·폭염에 식품물가 연중 '고공행진'
살충제 계란·간염 소시지 파문까지 "뭘 먹나"
대형마트 3사, 계란 한 판 5000원대로 인하
살충제 계란·간염 소시지 파문까지 "뭘 먹나"
대형마트 3사, 계란 한 판 5000원대로 인하
한국인의 밥상이 수난 시대를 겪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살충제 계란’만이 아니다.
작년 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시작이었다. 닭과 오리를 살처분한 여파로 올초 닭고기와 계란값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어 봄 가뭄과 한여름 폭염·폭우가 이어지면서 각종 채소와 수산물 가격까지 치솟았다. ‘삼겹살로 상추를 싸 먹겠다’는 말도 나왔다. 급등한 장바구니 물가는 식탁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연초부터 라면, 맥주, 참치캔 등의 가격도 올랐다. 살충제 계란과 소시지 파동은 이 와중에 일어났다. “비싸서 못 먹고, 무서워 못 먹겠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발생하는 AI까지 겹치면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살충제 계란…‘예고된 재앙’
‘먹거리 공포’는 작년 11월 충남 천안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시작됐다. 한 달여간 전국에서 20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산란계가 줄자 달걀 공급이 축소되고 가격은 치솟았다. 지난 1월 계란 한 판 가격은 1만원가량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닭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예고된 재앙’이라고 말한다.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줄어든 데다 폭염이 이어지자 농가들은 살충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농가가 더위에 진드기 등 해충을 막고, 계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더 강한 살충제밖에 없다는 얘기다.
봄 가뭄과 이른 더위는 채소값 고공 행진으로 이어졌다. 올 들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56%에 그쳤다. 주요 농작물은 잘 자라지 못했다. 가격은 올랐다. 25일 도매 시장을 기준으로 토마토와 양배추 가격은 1개월 새 100% 이상 올랐다. 배추(69.5%), 대파(52.3%), 애호박(43.1%), 감자(35.6%), 무(31.4%) 등도 마찬가지다. 여름 휴가철에는 삼겹살, 오징어 등도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렸다. 7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생활물가지수는 3.1%, 신선식품지수는 12.3% 폭등했다.
◆라면, 맥주…“안 오른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라면, 맥주, 치킨, 햄버거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올라 시름을 더했다. 작년 말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맥주 가격을 6%가량 인상했다.
음식점들은 올 들어 맥줏값을 1000원 정도씩 더 받기 시작했다. 가격 인상 대열에 라면회사,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도 합세했다. 농심과 삼양라면은 5~6% 올렸고,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햄버거 값을 인상했다. 자연별곡,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매드포갈릭 등 주요 패밀리 레스토랑과 공차코리아, 탐앤탐스 등도 가격 인상에 합류했다. 여름철 특수를 기대하는 ‘꼼수 인상’도 있었다. 설빙, 투썸플레이스, 뚜레쥬르, 드롭탑 등은 올 들어 빙수 가격을 400~2100원 높였다.
6월 BBQ와 교촌치킨은 치킨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가 소비자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식품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 문제가 더해져 국민들의 식품에 대한 불쾌지수는 더욱 높아졌다.
◆겨울 불청객 AI 또 올까 전전긍긍
소비자의 답답함은 더해가고 있다. AI로 인한 닭고기 안전성 우려, 맥도날드 햄버거병 관련 소송, 살충제 계란과 유럽발 간염 소시지 파동이 겹치면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서울 마포구의 정연수 씨(38)는 “계란처럼 매일 먹는 식품에 살충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 먹을 게 없다”며 “주부들 사이에서 아예 아파트 공동으로 암탉을 키우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먹거리 안전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2000년 납 꽃게, 2004년 쓰레기 만두 파동, 2008년 멜라민 분유, 2010년 카드뮴 낙지, 2015년 가짜 백수오 사태 등이 있었다.
하지만 계란은 빵과 각종 반찬 등에 많이 쓰이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단백질 공급원인 만큼 파장이 크고 오래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마트 관계자는 “다른 대체식품이 마땅치 않고 접근성이 좋은 식품군이라 소비자의 충격과 영향이 더 큰 것 같다”며 “당분간 가격은 떨어지겠지만 겨울 불청객인 AI 방역에 또 실패하면 내년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작년 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시작이었다. 닭과 오리를 살처분한 여파로 올초 닭고기와 계란값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어 봄 가뭄과 한여름 폭염·폭우가 이어지면서 각종 채소와 수산물 가격까지 치솟았다. ‘삼겹살로 상추를 싸 먹겠다’는 말도 나왔다. 급등한 장바구니 물가는 식탁을 빈곤하게 만들었다. 연초부터 라면, 맥주, 참치캔 등의 가격도 올랐다. 살충제 계란과 소시지 파동은 이 와중에 일어났다. “비싸서 못 먹고, 무서워 못 먹겠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발생하는 AI까지 겹치면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살충제 계란…‘예고된 재앙’
‘먹거리 공포’는 작년 11월 충남 천안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시작됐다. 한 달여간 전국에서 20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산란계가 줄자 달걀 공급이 축소되고 가격은 치솟았다. 지난 1월 계란 한 판 가격은 1만원가량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닭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은 ‘예고된 재앙’이라고 말한다.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줄어든 데다 폭염이 이어지자 농가들은 살충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농가가 더위에 진드기 등 해충을 막고, 계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더 강한 살충제밖에 없다는 얘기다.
봄 가뭄과 이른 더위는 채소값 고공 행진으로 이어졌다. 올 들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56%에 그쳤다. 주요 농작물은 잘 자라지 못했다. 가격은 올랐다. 25일 도매 시장을 기준으로 토마토와 양배추 가격은 1개월 새 100% 이상 올랐다. 배추(69.5%), 대파(52.3%), 애호박(43.1%), 감자(35.6%), 무(31.4%) 등도 마찬가지다. 여름 휴가철에는 삼겹살, 오징어 등도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렸다. 7월 통계청의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생활물가지수는 3.1%, 신선식품지수는 12.3% 폭등했다.
◆라면, 맥주…“안 오른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라면, 맥주, 치킨, 햄버거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올라 시름을 더했다. 작년 말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맥주 가격을 6%가량 인상했다.
음식점들은 올 들어 맥줏값을 1000원 정도씩 더 받기 시작했다. 가격 인상 대열에 라면회사,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도 합세했다. 농심과 삼양라면은 5~6% 올렸고,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햄버거 값을 인상했다. 자연별곡,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매드포갈릭 등 주요 패밀리 레스토랑과 공차코리아, 탐앤탐스 등도 가격 인상에 합류했다. 여름철 특수를 기대하는 ‘꼼수 인상’도 있었다. 설빙, 투썸플레이스, 뚜레쥬르, 드롭탑 등은 올 들어 빙수 가격을 400~2100원 높였다.
6월 BBQ와 교촌치킨은 치킨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가 소비자 반발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식품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 문제가 더해져 국민들의 식품에 대한 불쾌지수는 더욱 높아졌다.
◆겨울 불청객 AI 또 올까 전전긍긍
소비자의 답답함은 더해가고 있다. AI로 인한 닭고기 안전성 우려, 맥도날드 햄버거병 관련 소송, 살충제 계란과 유럽발 간염 소시지 파동이 겹치면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서울 마포구의 정연수 씨(38)는 “계란처럼 매일 먹는 식품에 살충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 먹을 게 없다”며 “주부들 사이에서 아예 아파트 공동으로 암탉을 키우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먹거리 안전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8년 포르말린 통조림, 2000년 납 꽃게, 2004년 쓰레기 만두 파동, 2008년 멜라민 분유, 2010년 카드뮴 낙지, 2015년 가짜 백수오 사태 등이 있었다.
하지만 계란은 빵과 각종 반찬 등에 많이 쓰이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단백질 공급원인 만큼 파장이 크고 오래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마트 관계자는 “다른 대체식품이 마땅치 않고 접근성이 좋은 식품군이라 소비자의 충격과 영향이 더 큰 것 같다”며 “당분간 가격은 떨어지겠지만 겨울 불청객인 AI 방역에 또 실패하면 내년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