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 '시계 제로'…그룹 리더십 진공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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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극복 전략도 안보여"
자동차 전장사업 등 올스톱…조직 활력 '뚝'
글로벌 신평사 "경쟁력 저하 불러올 것"
자동차 전장사업 등 올스톱…조직 활력 '뚝'
글로벌 신평사 "경쟁력 저하 불러올 것"
지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한국 최대 기업 삼성이 불확실성의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과거 고(故)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이 빈틈없이 이끌어 온 삼성그룹의 리더십은 완벽하게 진공상태에 들어갔다. 지난 2월 해체됐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그룹의 지주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 1, 2인자인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도 같은 날 법정구속됐다.
27일 경제계와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 1심 판결 이후 삼성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호황과 스마트폰 선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각 계열사와 사업조직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구조에선 경쟁력을 유지·확대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은 그룹 전체의 경영기획과 재무, 경영진단을 총괄하는 미래전략실과 계열사에서 사업을 집행하는 사장단 및 사업부장 조직으로 경영조직을 나눠서 운영해 왔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부장들은 경영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전념하고 나머지 중장기 전략과 계열사 간 협력 등은 그룹 조직이 맡는 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각 계열사 조직이 과거 미래전략실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삼성의 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조직 구성과 인력으로는 과거 그룹 조직이 제공해온 기획·전략·인사·재무 관련 경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리더십 공백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 동행할 경영자를 놓고 거명된 CEO들이 손사래를 친 적도 있다. “사업만 해온 사람이 뭘 안다고 대통령을 따라가느냐”는 반응이 많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계열사들의 인수합병(M&A)도 모두 멈췄다. 지난해부터 해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A사는 그동안 검토해온 글로벌 M&A를 전면 중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우리가 M&A 대상 기업을 물색하면 미래전략실이 국내외 법률 검토 등을 지원해줬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내부에서 누굴 상대로 상의해야 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1월 미국 인포테인먼트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M&A 검토를 거의 중단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하만 인수를 계기로 전면 확대할 예정이던 자동차 전장(電裝)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도 점차 무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은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면 관련 인재와 기술을 전방위로 확보해 사업을 단기간에 본궤도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년 3공장 완공으로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물질 생산 공장으로 발돋움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표적이다. 2011년 회사 설립 당시 삼성물산에서 해외 영업인력, 삼성전자에서는 바이오 생산에 필요한 클린룸 설치 및 운영 관련 인력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자리를 옮겨 조기 안착을 도왔다.
사업 현장에서는 ‘삼성답지 않은’ 실수가 잦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해외 거래처 납품을 놓고 삼성 계열사와 경쟁하고 있는 B사의 관련 실무자는 최근 삼성 측이 납품처에 낸 공급 제안서를 훑어보다가 여러 건의 오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문경영인 일변도 체제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아직 삼성의 경영 체제가 우수하고 CEO의 자질도 뛰어나지만 경영학자들이 얘기하는 ‘대리인의 실패’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전문경영인이 단순 외형 확대나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들 경우 중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에 대한 우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피치는 “리더십의 불확실성은 대규모 투자를 지연시킬 수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에 차질을 빚어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M&A 등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27일 경제계와 삼성그룹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 1심 판결 이후 삼성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호황과 스마트폰 선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처럼 각 계열사와 사업조직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구조에선 경쟁력을 유지·확대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과거 삼성은 그룹 전체의 경영기획과 재무, 경영진단을 총괄하는 미래전략실과 계열사에서 사업을 집행하는 사장단 및 사업부장 조직으로 경영조직을 나눠서 운영해 왔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부장들은 경영실적을 끌어올리는 데 전념하고 나머지 중장기 전략과 계열사 간 협력 등은 그룹 조직이 맡는 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각 계열사 조직이 과거 미래전략실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삼성의 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조직 구성과 인력으로는 과거 그룹 조직이 제공해온 기획·전략·인사·재무 관련 경영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리더십 공백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 동행할 경영자를 놓고 거명된 CEO들이 손사래를 친 적도 있다. “사업만 해온 사람이 뭘 안다고 대통령을 따라가느냐”는 반응이 많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계열사들의 인수합병(M&A)도 모두 멈췄다. 지난해부터 해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A사는 그동안 검토해온 글로벌 M&A를 전면 중단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 우리가 M&A 대상 기업을 물색하면 미래전략실이 국내외 법률 검토 등을 지원해줬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내부에서 누굴 상대로 상의해야 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1월 미국 인포테인먼트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M&A 검토를 거의 중단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하만 인수를 계기로 전면 확대할 예정이던 자동차 전장(電裝)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도 점차 무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은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면 관련 인재와 기술을 전방위로 확보해 사업을 단기간에 본궤도에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년 3공장 완공으로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물질 생산 공장으로 발돋움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표적이다. 2011년 회사 설립 당시 삼성물산에서 해외 영업인력, 삼성전자에서는 바이오 생산에 필요한 클린룸 설치 및 운영 관련 인력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자리를 옮겨 조기 안착을 도왔다.
사업 현장에서는 ‘삼성답지 않은’ 실수가 잦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해외 거래처 납품을 놓고 삼성 계열사와 경쟁하고 있는 B사의 관련 실무자는 최근 삼성 측이 납품처에 낸 공급 제안서를 훑어보다가 여러 건의 오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문경영인 일변도 체제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아직 삼성의 경영 체제가 우수하고 CEO의 자질도 뛰어나지만 경영학자들이 얘기하는 ‘대리인의 실패’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것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전문경영인이 단순 외형 확대나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들 경우 중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에 대한 우려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피치는 “리더십의 불확실성은 대규모 투자를 지연시킬 수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에 차질을 빚어 경쟁력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M&A 등 중요한 전략적 결정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