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을 누리던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복병을 만났다. 미국의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이 내년 초까지 국내 업체 생산능력의 절반에 가까운 연간 450만t에 달하는 에틸렌 증산을 앞두고 있어서다.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과 국제 유가 상승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공격적인 생산량 증가 예고

미국 다우케미칼·엑슨모빌 등 잇단 증산, 에틸렌 물량폭탄 준비… '슈퍼사이클' 올라탄 국내 석유화학에 찬물?
2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다우케미칼과 쉐브론, 필립스는 오는 10월부터 각각 150만t 규모의 에탄크래커(ECC) 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미국 최대 정유사인 엑슨모빌도 150만t 규모의 ECC 공장을 내년 1월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모두 450만t의 물량이 연말과 내년 초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토탈 등 국내 업체들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904만t)의 50% 수준이다.

에틸렌은 플라스틱과 비닐 같은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로 쓰여 ‘석유화학의 쌀’로 불린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로 유화 제품 수요가 늘면서 에틸렌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역시 ‘슈퍼사이클’이라고 불릴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다. 올해 상반기 LG화학 매출은 12조8688억원으로 처음으로 12조원 벽을 넘었다. 롯데케미칼은 영업이익이 1조4471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작년 역대 최대 영업이익(7792억원)을 올린 한화케미칼도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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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미국 업체의 증산으로 공급과잉 우려가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와 아시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 수익성이 미국 기업보다 뛰어난 데다 생산 제품에 차이가 있어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는 석유제품인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NCC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에서 에틸렌을 뽑아내는 ECC 방식을 주로 쓴다. 저유가가 장기화될수록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국내 업체에 유리한 구조다. 유가 하락으로 올해 평균 나프타 가격은 t당 466달러로, 2013년(922달러)보다 49.4%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ECC 원료인 에탄가스 가격은 5.1% 떨어지는 데 그쳤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2012년 미국 등 북미지역 ECC 신증설 계획은 1500만t에 달했다.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진 작년엔 770만t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국내 업체의 NCC는 에틸렌(30~40%) 이외에 프로필렌(16~18%)과 부타디엔(5%) 등이 고루 생산되는 데 비해 미국의 ECC는 에틸렌 비중이 80%에 달하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공급 과잉·저유가 변수

오히려 아시아 지역의 에틸렌 마진(원재료인 나프타와 제품인 에틸렌 가격 차이)이 상승하고 있어 하반기 국내 석유화학업체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마지막 주 t당 523.63달러이던 에틸렌 마진은 이번주 798.25달러로 52.4% 상승했다. 이달 글로벌 정유사 쉘의 미국과 네덜란드 정제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석유제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연간 12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대만 포모사의 NCC 설비도 정기보수에 들어가 아시아권 에틸렌 공급은 빠듯한 상태다.

변수는 유가다. 업계에선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웃돌면 셰일가스 기반의 ECC가 NCC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외 에틸렌 증설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까지 한화토탈(31만t), LG화학(23만t), 롯데케미칼(20만t) 등 국내 에틸렌 생산 증설 규모가 작지 않은 데다 같은 기간 완공을 앞둔 미국의 ECC 신규 설비는 986만t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에틸렌 증설 물량이 아시아로 유입되면 국내 업체의 수익성이 하락할 것”이라면서도 “미국 셰일가스 등으로 저유가가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당장 타격이 심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