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IQ에서 창의력으로, 인재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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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서 창의력으로 핵심역량 달라져
보고 듣는 것 쌓아서 상상력 키우고 기존 틀 벗어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보고 듣는 것 쌓아서 상상력 키우고 기존 틀 벗어나 현실에 적용할 수 있어야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9월이 되면 2018학년도 대학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각 대학의 학과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있고 그에 적합한 학생을 뽑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대부분 학과가 창의력을 지닌 인재를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학습능력은 내신등급이라는 숫자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만 창의력은 수치화돼 있지 않다. 아이큐(IQ)처럼 창의력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딱 떨어지는 숫자로 나타난 테스트 결과물이 있다면 좀 도움이 될까.
고등학교 때 IQ 테스트 결과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자신의 지능 정도가 단순 수치로 환산된 결과를 받는 순간이었다. IQ는 연령대별로 구분된 계산력, 기억력, 어휘력 등 일련의 문제에 대한 풀이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그 당시는 머리가 좋다는 건 보통 IQ가 높다는 뜻이었고, ‘IQ 180에 도전’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기도 했다. 암산 능력을 키우는 속셈학원도 있었고 빠른 독해력을 위해 속독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창의성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심심치 않게 들리더니 어느새 그것이 IQ가 차지하던 인재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요즘엔 머리가 좋다는 말과 창의적이라는 의미가 거의 일치하는 듯하다. 예전과 달리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그저 아는 것이 힘이던 시기는 지났고, 생각을 바로 현실로 구현해내는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부각된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IQ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도 개선이 되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듯이 창의력 또한 타고나는 것인지, 길러지는 것인지 아직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기존의 것을 조합해 생각해내는 힘으로 그저 반짝 아이디어와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지나치게 방대한 지식이 참신한 발상에 방해가 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기성의 생각과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창의력이 갑작스레 발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모하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미술 분야에서 창의력은 상상력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그런데 상상력에 대한 오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상상력이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에서 솟아난다고 믿는 것이다. 그야말로 잘못된 인식이다. 상상력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볼 때, 즉 감각적인 활동을 할 때 발동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털 많은 벌레를 만지고 소름끼치는 경험을 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구멍이 뚫린 나뭇잎은 벌레가 붙어 있을지 모르니 앞으로 만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이때 벌레를 만진 경험과 징그럽다는 느낌은 상상 에너지를 활성화시켜서 저런 나뭇잎을 피해야겠다는 피드백에 이르게 한다. 상상력은 일차적인 정보를 모으고 이차적으로 습득한 지식까지 긁어모아 이렇게 이어 붙이고 저렇게 합치고 하는 과정에서 점점 확장된다.
상상하는 힘이 커지면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할 줄 알게 된다. 벌어지지 않은 사건을 시뮬레이션하고 일어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가 하면, 보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남들이 이미 생각한 틀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상상력에서 가장 큰 적이다. 기존의 생각들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범위까지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쓴다. 그리고 상상한 것을 현실 속에 적용할 수 있는 감각까지 갖추면 창의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언젠가는 시대가 또 변해 창의력이 더 이상 최상의 가치로 군림하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다. 만일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맹활약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그때대로 새로운 인재상이 만들어지고 인간에게 다른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아마도 그건 융통성이나 임기응변 능력, 혹은 유머가 아닐까? 대학입시에서 어느 날 유머 실력을 겨루고 평가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
고등학교 때 IQ 테스트 결과가 나온 날을 기억한다. 자신의 지능 정도가 단순 수치로 환산된 결과를 받는 순간이었다. IQ는 연령대별로 구분된 계산력, 기억력, 어휘력 등 일련의 문제에 대한 풀이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그 당시는 머리가 좋다는 건 보통 IQ가 높다는 뜻이었고, ‘IQ 180에 도전’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하기도 했다. 암산 능력을 키우는 속셈학원도 있었고 빠른 독해력을 위해 속독학원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창의성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심심치 않게 들리더니 어느새 그것이 IQ가 차지하던 인재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요즘엔 머리가 좋다는 말과 창의적이라는 의미가 거의 일치하는 듯하다. 예전과 달리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그저 아는 것이 힘이던 시기는 지났고, 생각을 바로 현실로 구현해내는 창의력이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부각된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IQ가 선천적인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도 개선이 되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듯이 창의력 또한 타고나는 것인지, 길러지는 것인지 아직 정답은 없다. 분명한 것은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고안하거나 기존의 것을 조합해 생각해내는 힘으로 그저 반짝 아이디어와는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지나치게 방대한 지식이 참신한 발상에 방해가 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기성의 생각과 개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창의력이 갑작스레 발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모하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미술 분야에서 창의력은 상상력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그런데 상상력에 대한 오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상상력이 아무것도 없는 빈 종이에서 솟아난다고 믿는 것이다. 그야말로 잘못된 인식이다. 상상력은 무언가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볼 때, 즉 감각적인 활동을 할 때 발동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털 많은 벌레를 만지고 소름끼치는 경험을 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구멍이 뚫린 나뭇잎은 벌레가 붙어 있을지 모르니 앞으로 만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할 것이다. 이때 벌레를 만진 경험과 징그럽다는 느낌은 상상 에너지를 활성화시켜서 저런 나뭇잎을 피해야겠다는 피드백에 이르게 한다. 상상력은 일차적인 정보를 모으고 이차적으로 습득한 지식까지 긁어모아 이렇게 이어 붙이고 저렇게 합치고 하는 과정에서 점점 확장된다.
상상하는 힘이 커지면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할 줄 알게 된다. 벌어지지 않은 사건을 시뮬레이션하고 일어나지 않은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가 하면, 보지 못하는 사물의 이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남들이 이미 생각한 틀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상상력에서 가장 큰 적이다. 기존의 생각들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범위까지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쓴다. 그리고 상상한 것을 현실 속에 적용할 수 있는 감각까지 갖추면 창의적인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언젠가는 시대가 또 변해 창의력이 더 이상 최상의 가치로 군림하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다. 만일 뛰어난 창의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맹활약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는 그때대로 새로운 인재상이 만들어지고 인간에게 다른 역량이 요구될 것이다. 아마도 그건 융통성이나 임기응변 능력, 혹은 유머가 아닐까? 대학입시에서 어느 날 유머 실력을 겨루고 평가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주은 < 건국대 교수·미술사 myjoolee@konku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