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갈림길에 선 식약처
생리대 안전성 논란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규제 개혁과 강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였다. 불필요한 허가 절차를 줄여달라는 요구가 많지만 문제가 터지면 관리 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다양한 제품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의약외품 허가·신고 규정을 간소화해 준 것도 질타를 받고 있다.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생리대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거나 신고 후 판매할 수 있다. 허가를 받으려면 제조사가 제품의 독성을 시험한 동물실험 결과와 인체적용시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한 번 허가를 받으면 같은 원료를 사용한 제품은 신고만 하면 된다. 매번 독성 실험을 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생리대는 새로운 성분이나 신소재가 사용되기보다 형태나 포장만 바꿔서 새로 출시하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 유통되는 생리대는 허가가 아닌 신고 후 판매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깨끗한나라의 ‘릴리안’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식약처가 부작용 생리대의 안전성 검사를 면제해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고제를 없애고 허가제로 바꿔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법령을 개정해 식약처의 허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신고제가 아니라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에서 비롯됐다. 피부에 닿는 생리대 표면과 제조 성분에는 현행 기준으로 문제가 없지만 내부에 쓰인 접착제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 않고 남아 인체에 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식약처가 생리대 유해물질 104종의 검출량과 위해성 조사를 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안전성 기준은 까다로울수록 좋다.

그러나 섣부른 허가심사 강화로 식약처의 힘만 키워줘선 안 된다. 신고만으로 생리대를 판매할 수 있는 미국, 유럽과 달리 한국은 이미 식약처가 틀어쥐고 있는 규제가 많다. 규제는 만들긴 쉽지만 풀기는 어렵다. 자칫하면 중복 허가 심사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소비자에게 되돌아갈 수 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