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제약업체인 A사는 내달 초로 예정됐던 신규 생산설비 가동 시점을 한 달 뒤로 미뤘다. 설비를 공급하기로 한 협력업체에서 필요한 장비를 제때 납품하기 어렵다고 전해왔기 때문이다. 집채만한 장비의 납품이 미뤄진 이유는 생각보다 작은 데 있었다. 장비 제작에 필수적인 가로·세로 4㎝ 크기의 서보모터(servo motor)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4㎝짜리 '서보모터'에 울고 웃는 기업들
◆서보모터 품귀현상 심각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전자업체들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생산설비 증설 계획이 쏟아지며 서보모터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을 중심으로 생산설비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결과다.

4㎝짜리 '서보모터'에 울고 웃는 기업들
서보(servo)는 ‘따른다’는 뜻으로 서보모터는 대형기기에서 세부적으로 요구하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모터를 말한다. 단순히 회전운동을 하는 일반 모터와 달리 “몇 번 회전해 어느 정도의 각도에서 정지하라”는 명령까지 수행한다. 최고 사양의 서보모터는 360도를 40만 분의 1로 자른 각도까지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다. 자동차 제조용 산업 로봇에서 시작해 첨단 전자산업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 디스플레이 제조장치 하나에 100개 이상의 서보모터가 들어가는 등 생산설비당 필요한 서보모터 수는 늘었다. 전자 및 배터리산업의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섬세한 제조설비가 필요해진 데 따른 결과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드마켓은 2015년 102억6000만달러였던 서보모터 시장 규모가 2022년 159억2000만달러로 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급 부족에 웃돈까지 지급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품질의 서보모터는 주문에서 제품 배송까지 기간이 3개월 이상으로 늘어났다. 1년 전까지만 해도 1주일 이내에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과 상반된다. 서보모터 확보 여부가 생산설비 가동 시점에 영향을 주면서 일부 대형 디스플레이업체 등에서는 서보모터 제조사가 많은 일본에 고위 임원을 파견해 서보모터 수급에 신경을 쓰고 있다. 서보모터를 유통하는 한국도키멕 관계자는 “기업들이 필요한 서보모터 중 적기에 공급되는 것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며 “주문량에 따라 최대 절반까지 가격을 깎아줄 정도로 공급과잉이었지만 최근에는 적기에 납품받기 위해 웃돈을 주겠다는 업체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서보모터 품귀에 따른 악영향은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크다. 서보모터 업체들이 한 번에 수천 개씩 주문하는 대기업에 우선적으로 납품하면서 주문량이 적은 중소업체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국내 업체 반사이익 전망

서보모터 품귀는 국내 업체들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서보모터 시장은 미쓰비시와 야스카와전기 등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체가 충분히 물량을 대지 못하면서 국내에서 서보모터를 만드는 LS메카피온, 하이젠모터 등의 매출도 늘었다. 업계에서는 이들 업체의 올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40%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에 거래하던 일본 업체에서 서보모터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신규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공급 부족 현상이 국내 업체들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이젠모터 관계자는 “실제 품질에는 차이가 없지만 발주처의 관성적인 요구로 일본산 서보모터를 사용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제품을 사용한 기업들이 한국산 서보모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 이후에도 계속 사용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