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하비’로 대규모 정유공장이 멈추고 화학공장이 폭발하는 등 산업시설 피해가 막대한 미국 텍사스주에서 한 원자력발전소가 100% 정상 가동해 주목된다. 이 지역 반(反)원전 환경단체 세 곳이 “제2의 후쿠시마 사태가 우려된다”며 지난달 25일부터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게 맞다”고 압박해온 원전이다.

◆200만가구에 전기 공급

하비에 쑥대밭 된 텍사스… 끄떡없는 원전 덕에 '암흑천지' 면했다
31일(현지시간) 경제 전문지 포브스와 외신에 따르면 텍사스 휴스턴 남서쪽 145㎞ 지점에 있는 사우스텍사스프로젝트(STP) 원전은 하비 상륙 이후에도 100%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STP는 250여 명의 대책반을 구성해 공장에서 맞교대로 숙식을 해결하며 비상근무하고 있다. 회사는 직원들의 숙식에 필요한 식료품과 자재가 부족할 경우에 대비해 인근 월마트와 식료품점에 정상 영업을 부탁했다.

미국 원전안전감독기구인 원전규제위원회(NRC) 관계자도 이들과 함께 현장에서 대기근무했다. 이 덕분에 STP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200만가구는 기록적인 폭우에도 평소와 같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후쿠시마 같은 인재 막는 데 총력

STP 원전이 500~1000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폭우 속에서도 정상 운영이 가능했던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해일(쓰나미)이 제방을 타고 넘어 초래한 정전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전기가 끊기며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원자로가 폭발했다. STP 제방은 76㎝가 넘는 폭우로 불어난 물을 막는 데 충분했다.

또 STP의 원자로 두 기는 1988년 이후 제작돼 ‘비교적’ 신형이다. 열과 증기 발생 경로를 달리하는 가압경수로형이다. 열과 증기가 한 곳에서 발생하는 일체형(비등경수로형)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후쿠시마 원전은 비등경수로형이었다.

외신은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 초기 미숙한 대응으로 인한 인재(人災) 성격이 컸다는 점을 거울 삼아 STP 측이 초기부터 매뉴얼에 따른 대응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스콧 버넬 NRC 대변인은 “STP가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산업시설들은 피해 커

다른 산업시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폭우로 멕시코만 연안 정유시설이 폐쇄되고 화학공장에서는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휴스턴 북동쪽 40㎞ 지점에 있는 크로즈비의 프랑스 기업 아케마 화학공장에서 31일 오전 2시께 폭발음이 두 차례 들리고 높이 9~12m에 이르는 불꽃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공장은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방 장치를 가동해왔지만, 29일 폭우로 주전원 장치와 보조발전기 두 대가 모두 꺼지면서 냉방이 중단됐다. 소방당국은 추가 폭발에 대비해 공장 반경 2.4㎞ 이내에 사는 주민 5000여 명과 공장직원들을 대피시켰다.

정유공장에서는 벤젠과 톨루엔, 질소화합물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유출돼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하비로 텍사스에선 지금까지 최소 44명이 사망하고 480억달러(약 53조원)가 넘는 피해가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