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 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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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부처 고위공직자 인사를 앞두고 세종 관가가 뒤숭숭하다. 새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에 따라 전 정부에서 정책 추진의 핵심 역할을 맡았던 담당자들에 대한 대규모 ‘물갈이 인사’가 예고돼서다. 에너지, 노동, 교육 등 정책 방향이 크게 뒤바뀐 부처가 특히 그렇다. 고위직뿐 아니라 과장급 실무자에 대해서도 ‘솎아내기’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소문까지 나돈다. 이미 몇몇 부처에선 주요 보직을 일괄 교체하는 인사가 단행됐다. 과거 정책을 주도한 인사가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옷을 벗고 퇴진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정권 바뀌니…옷 벗는 고위공무원들

1일 세종 관가에 따르면 주요 부처들은 다음주까지 순차적으로 1급 고위직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탈(脫)원전’ 쪽으로 에너지정책 방향을 튼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주 에너지 분야 국장급을 교체한 데 이어 일괄 사표를 제출한 1급에 대해서도 이날 인사를 했다. 박원주 전 청와대 산업통상비서관이 에너지자원실장으로 전보됐고, 박일준 기획조정실장은 유임됐다. 도경환 산업기반실장, 김학도 에너지자원실장, 최태현 전 청와대 민원비서관 등 세 명에 대해선 사표를 수리했다.
영혼없는 공무원 되지 말라더니… 전 정부 정책 담당자들 솎아내기?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날 실·국·과장급 51명에 대해 보직 변경 인사를 했다. 지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사들은 모조리 2선 후퇴 또는 소속기관 전보발령을 받았다. 앞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급 공무원 6명이 옷을 벗었다. 교육부에선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정책에 관여했던 국·과장들이 대거 지방본부나 학교 등으로 발령났다.

조만간 인사가 이뤄질 국토교통부에선 8명의 1급 중 ‘8·2 부동산 대책’을 맡은 박선호 주택토지실장 등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해고 허용 등의 양대 지침을 추진했던 고용노동부, 개성공단 중단을 맡았던 통일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담당한 국방부 등도 곧 있을 ‘인사 폭풍’에 숨을 죽이고 있다.

한 중앙부처 고위 인사는 “정부가 바뀌면 1급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선별 수리하는 게 관례지만 이번엔 전 정부의 핵심 정책들이 적폐로 몰리면서 물갈이 규모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부처 한 서기관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유능한 선배 관료들이 줄줄이 교체되고 옷을 벗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역자 색출이냐” 반발 목소리도

일부 부처 장관들은 외부 인사로 ‘적폐청산 추진단’을 구성해 책임 소재를 가린 뒤 인사에 반영하겠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 관련 진상조사를 위한 ‘적폐청산 추진단’을 교육부 내에 두기로 했고,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노동 관련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고용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정치인 출신 김 장관이 국회 보좌관들을 데리고 교체후보를 고르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문체부, 외교부 등도 비슷한 TF와 조사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공직사회 일각에선 ‘부역자 색출’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부처 국장은 “이전 정부와 정책이 달라진 분야에선 무조건 담당자부터 바꾸고 보자는 분위기”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중앙부처 공무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정권에 충성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지 말라’고 했는데 이래서 영혼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고경봉/이태훈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