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어느 에너지 경제학자의 반성
요즘은 에너지 분야에서 일한다고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탈(脫)원전과 관련해 일부 학계와 사회단체들 간에 의견상충을 넘어 상대 존재조차 부정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벌어지고 있어서다. 심지어 누가 봐도 전문성이 부족한데도 전력가격과 에너지안보 등에 대한 비(非)과학적인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전력가격은 2030년까지 10%에서 230%까지 인상된다는 헷갈리는 주장이 나온다. 필자와 같은 에너지경제학 전공자들도 2030년 전력가격과 수급예측을 금방 하지 못한다. 그때까지의 수요수준과 기술혁신 예측, 환경 우려 등을 두루 감안한 전력시장 예측은 불가능하다. 많은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고 정부가 공익규제자로서 최종 확인하는 장기 전원개발 계획만이 가능하다.

이러니 국민도 이제는 무리한 논쟁 그 자체를 걱정하는 것 같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찬반 의견이 비슷하다. 어쨌든 탈원전 논란은 해결될 것 같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이란 대선공약은 3조원 가까운 매몰비용을 고려해 공론화위원회에 위임했다. 관련 당국도 효율적 에너지전환을 위해 향후 5년간 획기적 원전축소는 없다고 한다. 공론화 결과는 모르지만 최소 60년이 소요되는 탈원전은 상식선에서 해결될 것 같다. 그런데 왜 논란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까? 학계가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정부·학계의 3축이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기업은 부가가치 창출을, 정부는 분배정의 구현과 성장환경 조성을 책임진다. 학계는 경제주체들 간의 게임논리와 혁신방안을 제시한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시장실패 가능성이 커서 더욱 그렇다. 초과이윤 창출 구조 아래에서 독과점과 공급자 횡포, 소비자(국민) 폐해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기술혁신도 더디다. 정부개입이 정당화되는 시장실패의 전형이다. 더욱이 시장실패가 정부실패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차선(次善)의 선택 등 시장논리한계를 반영한 복합과학적 접근이 요구된다.

물론 국가에너지시스템 효율화가 궁극적인 목표다. 따라서 학계의 논리검증 없는 기업성장전략과 정부정책은 자기합리화로 귀착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 학계 현실은 복합과학으로서 정체성 확립이 미흡하다. ‘에너지’의 실체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에너지를 모두가 이기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

해결과제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실체 파악이 논리적이다. 주된 해결과제로는 자원고갈에 따른 공급과 가격 불안정, 환경오염, 민생필수재인 에너지의 공공성과 시장경제의 조화문제, 최종 소비자효용 증대방안 등 4개로 대별된다. 복잡계 위험관리의 전형이다. 따라서 에너지원별로 다양한 차별적 논리의 적용이 불가피하다. 학문융합과 복합과학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에너지 전문가’의 범위가 구획돼야 한다. 그러나 학부 위주의 교육현장에서 대학원 과정에서나 가능한 복합과학적 소양을 갖춘 에너지 전문가 양성은 불가능했다. 산업현장과 관련 기관에 오래 있기만 하면 전문가로 인정됐다. 전문가시장 진입이 너무 쉬웠다. 한 번 진입하면 공공에너지산업에서 퇴출은 거의 없다. 신규인력 보충 역시 기득권 보호에 우선했다. 이제는 환경과 원전기술 종사자들이 사회적 합의 명분 아래 에너지정책 전문가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보완적 역할은 가능하나 과도한 개입은 학문윤리를 저해할 수 있다. 지금의 탈원전 논쟁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문가 구획 부재 현상은 모든 경제사회 구성의 밑바탕을 소리 없이 지원해야 할 에너지부문 가치를 매몰시키고 논쟁의 대상으로 노출시켰다. 이제라도 국가 에너지체계 합리화의 기본논리를 공고히 할 전문 교육체제 정비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민생기반이라서 모두에게 개입을 허용한 에너지문제가 ‘공유지의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로서 이런 책무 수행에 무능했던 점을 반성한다.

최기련 < 아주대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