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문 관세청장(왼쪽 다섯 번째)이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 마련된 개청 47주년 기념 세관역사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관세청  제공
김영문 관세청장(왼쪽 다섯 번째)이 정부대전청사 중앙홀에 마련된 개청 47주년 기념 세관역사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관세청 제공
1876년 당시 조선은 일제의 무력에 굴복하며 부산항을 열고 기한없는 무관세무역을 허용했다. 개항장의 상황은 왕성한 데 비해 세금이 없던 것에 주목한 조선은 두모진(현 부산 수정초등학교 부근)에서 초량 왜관에 이르는 길 주변 8곳에 세금 징수대를 설치했다. 조선 상인들을 대상으로 일본 상인과 매매한 물건에 대해 과세를 단행한 것이다. 내국인에 대한 당연한 과세권 행사라 판단한 조선은 일본 측에 어떠한 통지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상인들은 조선 측에 불법 세관 설치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일본 정부에 호소했다. 일본 정부는 무장병력과 최신예 군함을 동원해 조선을 겁박했다. 결국 조선은 과세권 포기에 배상금까지 물게 됐다. 두모진 해관 수세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불과 3개월이지만 관세 주권을 행사한 것으로 후대에서 평가받고 있다.

관세청이 올해 개청 47주년을 맞아 세관 역사를 되돌아보며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위험하거나 부정한 물품이 우리 국경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누구나 법에 정해진 세금을 공평하게 내게 해 국경을 관리하는 종합관리기관으로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취지다.

관세청이 1970년 8월27일 문을 연 뒤 한국 무역 규모는 28억달러에서 9016억달러로 322배 늘었다. 세수는 568억원에서 49조5293억원으로 872배 증가했다. 조직 역시 14개 세관에서 34개로, 인력은 1870명에서 4580명으로 늘었다.

단순히 수치 측면에서 덩치만 커진 것이 아니다. 개청 당시에는 세수확보와 밀수단속이 주된 기능이었지만 개방화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통관절차 간소화, 자유무역협정(FTA) 활용 지원 등의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개척해 왔다.

불공정무역과 무역금융범죄의 단속뿐만 아니라 불량먹거리·마약·테러물품의 차단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과 물건, 자금에 대한 종합관리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왔다.

관세청은 관세행정 사료(史料) 발굴을 통해 조직 뿌리를 더욱 튼튼히 할 계획이다. 관세청은 지난달 25일부터 1주일간 개청 47주년을 맞아 정부대전청사 지하 1층에 ‘세관역사 전시회’을 열었다. 이 전시회는 개항 초기 조선해관의 기능과 역할 등 8가지 테마로 나눠 구성했다.

조선 해관은 오늘날의 세관 역할뿐만 아니라 개항장(인천, 원산, 부산)의 도시계획 수립, 안전항해를 위한 각종 표지물 설치 및 기상관측 등 개항과 관련된 다양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개별 부처로 분화된 업무들이지만 당시는 해관 이외에 업무를 맡을 곳이 없었다. 서울 덕수궁 내 건물 중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 정관헌 같은 건물들도 해관이 착공했거나 해관직원이 건축했다. 명성황후의 시해 현장을 목격한 것도 사바친이라는 해관원이다. 이 사람의 글로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했다.

관세청은 지난 6일 1908년 건립된 옛 군산세관청사를 현대적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해 ‘호남 관세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관세청은 해방 초기부터 밀수 척결을 위해 노력한 세관직원들의 자료를 담은 ‘밀수실화 모음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한국 근대사에는 세관 업적들이 누락된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며 “과거를 본받아 국민 재산권을 지키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