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미국 블랙스톤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창업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의 투자 및 조직운영 능력을 신뢰해 블랙스톤을 선택한다. 그가 언제라도 그만둘 위험이 있다면 투자자들은 블랙스톤에 투자금을 맡기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
120조원의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한국투자공사(KIC)나 600조원의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은 국민들이 소중한 재산을 맡긴 위탁운용사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관들이 민간운용사였다면 정성평가에서만큼은 최악의 점수를 받을 게 분명하다. 키맨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7일 새 수출입은행장으로 내정돼 자리를 옮기게 된 은성수 KIC 사장은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남았다. 공무원 출신인 은 사장으로선 KIC보다 큰 조직인 수출입은행장으로 가는 게 축하받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선 정권이 바뀌면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나는 공무원 출신 KIC 사장은 그 자체로 리스크 요인이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의 키맨 리스크는 더 크다. 이사장 자리는 문형표 전 이사장이 최순실 사태에 연루돼 구속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공석이다. 기금운용본부장도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퇴한 지 2개월이 다 돼 가지만 공모 절차도 시작하지 못했다. 두 자리 모두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부가 누구를 내려보낼지 결정하지 못한 게 리더십 공백의 이유라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자리 만들기에 급급한 공무원들, 국민 재산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정치인들 때문에 한국 운용업계는 덩치만 커졌을 뿐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들은 수백조원의 재산을 맡기면서도 키맨 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