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국]불닭볶음면이 닭갈비볶음면 될 뻔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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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새로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이며 기존 제품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냉철한 소비자들에게 검증받은 '스테디셀러' 사이에서 신제품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좁다. [개발자국]에서는 이런 바늘구멍을 뚫고 대성공을 거둔 제품들을 만들어 낸 최고의 개발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대표 라면은 삼양라면이었다. 최초의 국산 라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50년 넘게 삼양식품의 대표 제품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삼양식품을 이끄는 제품은 54살 먹은 삼양라면이 아닌 이제 갓 5살이 된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삼양식품은 사상 첫 수출 1000억원을 넘어 2000억원 수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갓 시리즈'가 프리미엄 라면 경쟁에서 4위로 밀리며 오뚜기에 업계 2위 자리를 내준 삼양식품에겐 그야말로 '효자 상품'이다.
◆"마니아 라면 될 줄 알았는데…대성공 기대 못했죠"
지난 5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삼양식품 공장에서 만난 불닭볶음면의 개발자 원주연 차장은 불닭볶음면이 이렇게까지 대성공을 거둘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생길 거라곤 예상했지만 지금 같은 1위 제품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 불닭볶음면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소비자들의 평가는 "지나치게 매워서 아무나 먹을 수 없다"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생각했죠.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매운 음식이 인기를 끄는 경향도 있구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운 음식을 찾게 되니까 매운 라면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매운 라면으로 통하던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2700SHU인데 비해 불닭볶음면의 스코빌 지수는 4404SHU에 달한다. 특히 국물이 없는 볶음면의 특성상 실제 먹을 때 느끼는 매운 정도는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신제품 개발에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삼양식품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이단아'였다.
"더 매운 버전도 있었어요. 내부 테스트를 수 차례 거치면서 더 매운 버전, 덜 매운 버전 등을 만들면서 최종적으로 지금의 불닭볶음면이 완성된 거죠. 사장님이 매운 맛 라면을 강력하게 지지해주신 덕에 통과됐죠."
◆"닭갈비라면 될 뻔했는데"
원주연 차장의 말처럼 불닭볶음면의 개발 비화에는 김정수 사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 사장이 명동을 지나면서 불닭 매장에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개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원래 아이템은 닭갈비맛 볶음면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불닭 아이템을 제안하셨고 개발팀에서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죠. 저도 매운 맛을 좋아해서 '더 맵게 가자'는 방향성에 흥미를 느꼈어요."
초기엔 후레이크에 건조 닭고기가 들어있는 등 조금 더 '불닭'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후 닭고기를 액상화 하면서 겉보기에는 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닭고기가 직접 들어가면 수출할 때 여러 문제가 있어서 정식 버전에서는 닭 건더기가 빠졌어요. 하지만 베이스를 닭 육수로 만들어 맛에 두터움을 더했죠. 닭이 보이지는 않지만 닭의 맛은 남아 있달까요."
◆"매운맛 줄었다? 오해입니다"
불닭볶음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불닭볶음면이 초창기보다 덜 매워졌다는 '괴담'이 있다.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적인 취향을 맞추기 위해 매운맛을 몰래 줄였다는 주장이다.
"절대 아닙니다. 불닭볶음면의 매운 맛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게 된 이후로 매운 음식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매운 맛에 대해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회사 내부에서도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었을 땐 땀을 뻘뻘 흘리던 신입사원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정도 매운 맛을 경험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덜 매워 보이는 거죠."
대신 다양한 버전의 불닭볶음면들로 지금의 매운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맵다는 사람들을 위한 '순한 버전'도 꾸준히 나온다. 다양한 버전으로 다양한 취향에 맞춰가겠다는 의지다.
"치즈불닭볶음면이나 쿨불닭비빔면, 커리불닭볶음면은 오리지널보다 덜 맵죠. 반면 불닭볶음탕면이나 핵불닭볶음면은 훨씬 더 맵게 만들었어요. 핵불닭볶음면 같은 경우엔 고객 감사 이벤트로 만든 한정 제품인데, SNS를 중심으로 호응이 아주 좋았어요. 2개월만에 800만 개를 팔아치웠죠."
◆"나만의 불닭볶음면 레시피는요…"
불닭볶음면은 인터넷에 다양한 레시피가 공유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시지나 만두, 떡을 넣어 라볶이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치즈를 올려 매운 맛을 중화시키기도 한다. 불닭볶음면이 SNS에서 처음으로 입소문을 탄 것도 컵라면에 스트링 치즈를 올리고 삼각김밥을 넣어 먹는 '편의점 버전' 때문이다. 삼양식품도 치즈를 올리는 레시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정판으로 스노윙 불닭볶음면을 내놨고 이후 치즈불닭볶음면을 정식 출시했다.
"개발 중에 너무 많은 불닭볶음면을 먹어서 집에서는 따로 챙겨먹지는 않는 편이에요. 대신 소스를 이용해서 요리를 할 때가 많아요. 닭볶음탕이라든지 닭발, 등갈비찜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죠.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불닭소스를 찍어 먹어도 별미에요."
원 차장의 생활 노하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삼양식품은 지난 7일 온라인몰을 통해 불닭볶음면 소스를 따로 판매했다. 2시간만에 준비된 물량이 모두 팔렸고 한 때 서버가 다운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해외시장 인기, 당분간 계속될 걸요?"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해외에서 더 열광적이다. 카레불닭볶음면과 마라불닭볶음면은 아예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제품이다. 매출도 해외에서 더 많이 나온다.
"영국남자가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을 소개한 뒤로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높아진 건 사실이에요. 매운 맛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돼 버렸죠. 처음에는 도전정신이랄까, 얼마나 맵길래? 하고 접하는데 나중에 또 생각나는 맛이라는 평이 많아요. 한 두번 먹고 영상 찍고 끝이면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설 텐데,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어요. 앞으로 삼양식품을 이끌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대표 라면은 삼양라면이었다. 최초의 국산 라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50년 넘게 삼양식품의 대표 제품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삼양식품을 이끄는 제품은 54살 먹은 삼양라면이 아닌 이제 갓 5살이 된 '불닭볶음면'이다.
불닭볶음면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삼양식품은 사상 첫 수출 1000억원을 넘어 2000억원 수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갓 시리즈'가 프리미엄 라면 경쟁에서 4위로 밀리며 오뚜기에 업계 2위 자리를 내준 삼양식품에겐 그야말로 '효자 상품'이다.
◆"마니아 라면 될 줄 알았는데…대성공 기대 못했죠"
지난 5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삼양식품 공장에서 만난 불닭볶음면의 개발자 원주연 차장은 불닭볶음면이 이렇게까지 대성공을 거둘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생길 거라곤 예상했지만 지금 같은 1위 제품이 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는 것이다. 실제 불닭볶음면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소비자들의 평가는 "지나치게 매워서 아무나 먹을 수 없다"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생각했죠.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매운 음식이 인기를 끄는 경향도 있구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매운 음식을 찾게 되니까 매운 라면이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매운 라면으로 통하던 신라면의 스코빌 지수가 2700SHU인데 비해 불닭볶음면의 스코빌 지수는 4404SHU에 달한다. 특히 국물이 없는 볶음면의 특성상 실제 먹을 때 느끼는 매운 정도는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신제품 개발에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삼양식품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운 '이단아'였다.
"더 매운 버전도 있었어요. 내부 테스트를 수 차례 거치면서 더 매운 버전, 덜 매운 버전 등을 만들면서 최종적으로 지금의 불닭볶음면이 완성된 거죠. 사장님이 매운 맛 라면을 강력하게 지지해주신 덕에 통과됐죠."
◆"닭갈비라면 될 뻔했는데"
원주연 차장의 말처럼 불닭볶음면의 개발 비화에는 김정수 사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김 사장이 명동을 지나면서 불닭 매장에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개발 방향을 바꿨다는 것이다.
"원래 아이템은 닭갈비맛 볶음면에 가까웠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불닭 아이템을 제안하셨고 개발팀에서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죠. 저도 매운 맛을 좋아해서 '더 맵게 가자'는 방향성에 흥미를 느꼈어요."
초기엔 후레이크에 건조 닭고기가 들어있는 등 조금 더 '불닭'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후 닭고기를 액상화 하면서 겉보기에는 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닭고기가 직접 들어가면 수출할 때 여러 문제가 있어서 정식 버전에서는 닭 건더기가 빠졌어요. 하지만 베이스를 닭 육수로 만들어 맛에 두터움을 더했죠. 닭이 보이지는 않지만 닭의 맛은 남아 있달까요."
◆"매운맛 줄었다? 오해입니다"
불닭볶음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불닭볶음면이 초창기보다 덜 매워졌다는 '괴담'이 있다.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적인 취향을 맞추기 위해 매운맛을 몰래 줄였다는 주장이다.
"절대 아닙니다. 불닭볶음면의 매운 맛은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게 된 이후로 매운 음식들이 많이 나타나면서 매운 맛에 대해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회사 내부에서도 불닭볶음면을 처음 먹었을 땐 땀을 뻘뻘 흘리던 신입사원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고 있어요. 다른 곳에서도 이정도 매운 맛을 경험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덜 매워 보이는 거죠."
대신 다양한 버전의 불닭볶음면들로 지금의 매운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물론 아직도 맵다는 사람들을 위한 '순한 버전'도 꾸준히 나온다. 다양한 버전으로 다양한 취향에 맞춰가겠다는 의지다.
"치즈불닭볶음면이나 쿨불닭비빔면, 커리불닭볶음면은 오리지널보다 덜 맵죠. 반면 불닭볶음탕면이나 핵불닭볶음면은 훨씬 더 맵게 만들었어요. 핵불닭볶음면 같은 경우엔 고객 감사 이벤트로 만든 한정 제품인데, SNS를 중심으로 호응이 아주 좋았어요. 2개월만에 800만 개를 팔아치웠죠."
◆"나만의 불닭볶음면 레시피는요…"
불닭볶음면은 인터넷에 다양한 레시피가 공유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시지나 만두, 떡을 넣어 라볶이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치즈를 올려 매운 맛을 중화시키기도 한다. 불닭볶음면이 SNS에서 처음으로 입소문을 탄 것도 컵라면에 스트링 치즈를 올리고 삼각김밥을 넣어 먹는 '편의점 버전' 때문이다. 삼양식품도 치즈를 올리는 레시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정판으로 스노윙 불닭볶음면을 내놨고 이후 치즈불닭볶음면을 정식 출시했다.
"개발 중에 너무 많은 불닭볶음면을 먹어서 집에서는 따로 챙겨먹지는 않는 편이에요. 대신 소스를 이용해서 요리를 할 때가 많아요. 닭볶음탕이라든지 닭발, 등갈비찜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죠.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불닭소스를 찍어 먹어도 별미에요."
원 차장의 생활 노하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삼양식품은 지난 7일 온라인몰을 통해 불닭볶음면 소스를 따로 판매했다. 2시간만에 준비된 물량이 모두 팔렸고 한 때 서버가 다운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해외시장 인기, 당분간 계속될 걸요?"
불닭볶음면의 인기는 해외에서 더 열광적이다. 카레불닭볶음면과 마라불닭볶음면은 아예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제품이다. 매출도 해외에서 더 많이 나온다.
"영국남자가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을 소개한 뒤로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의 인기가 높아진 건 사실이에요. 매운 맛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돼 버렸죠. 처음에는 도전정신이랄까, 얼마나 맵길래? 하고 접하는데 나중에 또 생각나는 맛이라는 평이 많아요. 한 두번 먹고 영상 찍고 끝이면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설 텐데,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어요. 앞으로 삼양식품을 이끌 스테디셀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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