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0원'도 30여 세대…전체 세대의 58%가 '난방비 이상'
주민들 "다른 집 난방비 내가 부담…용납 못 할 일"
한 아파트단지내 '난방비 0원'이 1000세대… 무슨 일이?
경기도의 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에서 1천여 세대가 길게는 3년간, 짧게는 몇 개월간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도 또는 전달보다 난방비가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든 세대도 2천 곳이 넘어 이 아파트단지 내에서만 전체 세대의 58%가 '난방비 이상' 세대로 분류됐다.

사용량이 전혀 측정되지 않은 세대의 난방비는 같은 단지 내 다른 세대들이 분담한 것으로 나타나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11일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와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이 단지 내 5천280 세대의 3년 치 난방비 납부 현황을 조사한 결과 몇 개월 이상 난방 열량 사용량이 '0'이어서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세대가 18.9%인 996 세대로 나타났다.

특히 2014년 1월부터 최근까지 3년 6개월 동안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곳도 30∼40 세대에 달한다고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밝혔다.

한겨울인 12∼2월에도 전혀 난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세대도 많고, 2∼3개월 난방비를 냈다가 다시 5∼6개월 난방비가 '0원'인 세대도 수두룩했다.

전체 세대의 39.6%인 2천91 세대는 전년 같은 시기 또는 최근 몇 달 사이 갑작스럽게 난방비가 급감하거나 각 동 평균 사용량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어떤 세대는 10월 2만여원의 난방비를 냈다가 오히려 날씨가 추운 12월과 1월 0원을 납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난방비에 이상한 점이 확인된 경우가 아파트 전체 세대의 58.5%인 3천87세대에 달한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2014년 이전까지 얼마나 많은 세대가 이같이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았는지는 조사조차 못 하는 상황"이라며 "무슨 일인지 지난해부터 난방비를 전혀 내지 않거나 금액에 이상이 있는 세대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난방비가 0원이거나 급감한 세대 중 상당수는 적산 열량계의 노후화로 인한 일시적 고장, 장기간 빈집 상태 유지, 난방비 절약 등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아파트 각 세대 현관 옆에 있는 온수 사용량 표지부(적산 열량계)의 뚜껑을 열어 건전지 전원을 차단하는 등 '난방비 0원 만들기' 방법이 알려진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 아파트 전체 세대 중 3천524 세대의 적산 열량계가 1999년 입주 초기 설치된 것들로 열량계 뚜껑을 열어 건전지를 빼내거나 전원을 차단할 수 있는 구형이고, 봉인돼 조작이 불가능한 신형 열량계로 교체한 세대는 1천163세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교체는 했으나 역시 구형으로 드러났다.

이 아파트단지는 한국지역난방공사에서 보내주는 온수 총량을 토대로 관리사무소가 난방공사에 난방비를 일괄 납부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이 금액을 각 세대의 사용량에 맞춰 분담, 징수해 왔다.

이에 따라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은 세대의 난방비를 나머지 세대가 분담해 온 셈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난방을 하고도 돈을 내지 않은 세대의 난방비를 정상적인 난방비 납부 세대들에 분담시키다 보니 난방비 단가가 어느 달은 7천200원이었다가 어떤 달은 8천500원이 되는 등 들쭉날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또 미납 세대의 난방비를 단지 내 두 곳에 불과한 경로당 난방비인 '공용 난방비'라는 명목으로 각 세대에 전가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근 난방비가 0원이거나 급감한 세대에 "아파트 동별 평균 난방비 또는 지난해 동월 난방비를 기준으로 세대별 난방비를 추가 부과하겠다"며 안내문을 보냈다가 정상적인 난방비를 납부해 온 입주민들이 강력히 반발하자 백지화하기도 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지난 1월 조사에서 난방비 0원 세대가 495 세대로 나오는 등 그동안 난방비를 제대로 내지 않는 세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 6월 대표회의 회장으로 당선된 뒤 '정상적으로 난방비를 납부하는 세대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정밀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은 고의적인 열량계 조작, 노후·고장 열량계 방치,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근무 태만 등이 이같은 사태의 원인이 됐다"며 "그동안 부당하게 추가 난방비를 부담한 세대 등의 반발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단 올겨울이 오기 전 구형 적산 열량계를 모두 교체하도록 하는 등 입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 입주민은 "만약 고의로 열량계를 조작해 난방비를 내지 않은 세대가 있다면 이는 비양심적인 행동이며, 관리사무소가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더욱이 일부 세대에서 내지 않은 난방비를 다른 세대에 전가했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원연합뉴스) 김광호 기자 kw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