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시인 "부대끼는 우리 사회에 '사랑' 지피고 싶었죠"
“세월호 사고와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마음에 온기가 사라졌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훼손된 마음을 온기로 회복시키기 위해 사랑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기도 내지는 바람, 소망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시인 이원(사진)이 다섯 번째 시집 《사랑은 탄생하라》(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차가운 언어로 전위적인 시를 써온 시인이지만 이번 시집에서는 변화가 보인다. “감정이나 정서가 시에 드러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던 시인은 제목부터 ‘사랑’을 내걸었다. 우리 사회와 인간이 나아가야 할 최종 종착지로서 사랑을 제시한다. 12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난 시인은 “이상의 시 중 ‘사람은 절망하라/사람은 탄생하라’는 구절이 있다”며 “‘사랑은 탄생하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다”고 말했다.

시집은 다섯 개의 장, 61편의 시로 구성됐다. 1부 ‘애플스토어’와 2부 ‘밤낮’에서는 상충되는 감각이 한 데 모여 하나의 행성을 이루고, 4부 ‘큐브’에서는 세월호라는 공동체적 비극을 다뤘다. 5부 ‘밤낮없이’에서는 행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 즉 희망을 노래한다.

시인만의 시적 개성을 가득 담아낸 ‘모두의 밤’에서는 특유의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의자의 편에서는 솟았다//(…)//그림자의 편에서는 벽으로 끌어 올려졌다//벽의 편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긁혔다’. 방에 우두커니 놓인 의자의 모습을 각각 벽, 의자, 그림자의 시선에서 그려냈다.

“제 시선과 주관을 버리고 사물을 관찰하고 묘사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모든 존재는 다 각각의 입장이 있으니까요. 특히 의자는 인간의 형상을 많이 닮아서 제가 좋아하는 사물이에요. 텅 빈 의자에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더 잘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전 시집에서도 3인칭 관점에서 아이를 많이 등장시켰지만 이번 시집에는 아예 아이의 목소리와 시선으로 쓴 시가 유난히 많다. “평소의 나는 그렇지 않지만 시를 쓸 때의 저는 천진함을 회복한 상태에서 시를 씁니다. 그 순간만큼은 천진함에 가까웠다고 믿어요. 그런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아이가 돼 보고 아이를 부르기도 하죠.”

천진함과 순수함을 뿜어내던 아이들은 바다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시 ‘목소리들’처럼 그 아이들이 다시 내는 목소리는 시인을 죽음의 심연 밑바닥으로 끌어들였다. “미학적 의도로 시의 형식을 정할 때도 있지만 ‘목소리들’을 쓰면서는 어느 순간 제가 그 아이가 됐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시였습니다.”

앞으로는 본인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좀 더 유연한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게 시인의 바람이다. “춤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춤을 추는 어느 순간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하고요. 이번 생에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면 황홀할 것 같습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